[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축구, 야구 그리고 여자배구

2021. 8. 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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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지난달 31일 토요일 저녁때의 일이다. 도쿄올림픽에서는 축구경기(한국과 멕시코)와 야구경기(한국과 미국), 여자배구경기(한국과 일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 생중계하는 방송채널은 4개(KBS1-TV, KBS2-TV, MBC-TV, SBS-TV)였다. 각 방송국마다 1개 종목씩 생중계를 해도 1개 채널이 남았다. 하지만 실상은 3개 방송사(KBS2-TV, MBC-TV, SBS-TV)는 축구를 중계하고, 1개 방송사(KBS1-TV)는 야구를 중계했다. 배구는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을 통해서만 생중계를 볼 수 있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에서 촬영한 영상을 지상파 방송 3사가 그대로 받아 송출하기 때문에 방송 화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목소리는 달랐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국가대표 출신의 안정환(MBC), 조원희(KBS2), 최용수(SBS)를 해설위원으로 기용하여 생중계를 하였다. 그렇기에 해설의 깊이, 흥분 정도 등에서만 차이가 있었다.

방송3사의 '담합적인 생중계' 응원에도 이날 한국 축구는 멕시코에게 3대 6으로 지면서 8강전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야구가 최고 인기종목으로 떠올랐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 4일 일본과의 준결승전, 5일 미국과의 패자준결승전을 모두 중복해서 중계하였다. 시청자들은 같은 영상을 갖고 이순철과 이승엽(SBS), 박찬호(KBS), 허구연과 김선우(MBC) 등 목소리만 달리하여 들어야 했다. 낮 시간에 주로 중계된 탁구의 경우에도 유남규(MBC), 현정화(SBS), 안재형(KBS) 등이 해설자로 나서 같은 시간대에 목소리 경쟁을 펼쳤다. 입만 다른 중계, 즉 '입중계' 경쟁이었다.

방송법(2조)에서는 '보편적 시청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 밖의 주요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를 근거로 올림픽과 월드컵 등과 같은 메가 스포츠 경기를 자신들이 중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기본 수신료 외에 추가비용의 지불 없이 이들 스포츠 경기를 시청가능하다고 말해왔다. 또한 보편적 시청권과 과도한 경쟁 방지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특정 방송사가 단독으로 메가 스포츠 중계하는 것을 막아왔다.

하지만 보편적 시청권은 방송사업자의 권리가 아니라 시청자의 권리다. 그렇기에 방송법 76조 5항에서는 중계방송권의 과다한 중복편성으로 인해 시청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채널별, 매체별로 순차적으로 편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채널별, 매체별 순차편성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방송사업자에게 권고할 수 있다고 적시해놓았다.

국내에서는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을 흔히 4대 프로스포츠로 부른다. 그만큼 국민들의 인기와 기대가 높은 스포츠이다. 하지만 이들 4대 프로스포츠 중에서도 인기 순위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프로야구의 인기가 프로축구보다는 더 높지만 국가대표 경기만큼은 축구의 인기가 단연 최고다. 올림픽 축구와 야구, 배구 등이 동시에 열리면 다들 축구 경기를 중계하려고 할 것이다. 높은 시청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전 중계종목배분이 필요했다.

만약 지상파 방송사들이 특정 종목경기를 지속적으로 중복해서 중계한다면 이는 방송사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를 감독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중복편성문제는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도, 2018년 월드컵경기 때에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축구와 야구, 여자배구의 순서로 우선순위를 두고 TV생중계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축구(8강)와 야구(4강)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반면, 여자배구는 금메달만큼 값진 4강을 이뤄냈다. 국민들은 매 경기마다 파이팅을 외치며 최선을 다한 배구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영, 다이빙, 높이뛰기, 역도, 체조, 유도, 사격, 럭비, 배드민턴 등에서 비록 순위권 밖이지만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 젊은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들의 경기는 인기종목, 메달종목에 밀려 방송에서 소외되었다. 3년 뒤에 열리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반드시 중계종목배분과 편성으로 보다 다양한 종목, 많은 경기들이 시청자들에게 중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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