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혐오에 침묵하지 않는 정치를 보고 싶다

한겨레 2021. 8.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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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비평]암호를 규정하고 여성 입 막는 놀이
이름 짓고 공식적 시각 만드는 권력
성차별적 학대 두고 '갈등'이라니
혐오의 공적 승리 경험 돕지 말아야

[한겨레S] 이라영의 비평

문화적 입마개 씌우기

‘남혐 논란’에 휩싸였던 전쟁기념관 포토월 일부.

‘젠더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남성혐오는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남성혐오, 남성혐오, 남성혐오를 반복하면서 아무 어휘에나 ‘남성혐오’라는 딱지를 남발하는 차별주의자들이 점점 공적인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온 사회가 ‘남성을 혐오하지 않아요’라고 달래주며 기분을 맞춰주길 원한다.

공식적 시각을 만드는 권력

편의점 지에스(GS)25 포스터의 손가락 모양을 두고 일부에서 남성비하라는 억지를 부리면서 시작된 해명과 사과는 국방부와 전쟁기념관까지 이어졌다.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 부처마저 혐오가 승리하는 경험을 갖도록 해주었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는 ‘남성혐오’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창조하여 21세기 한국형 마녀사냥을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꼴이다. ‘손가락’으로 난리 치는 행동은 실제로 그 ‘손가락’에 분노했기 때문이 아니다. 암호라고 규정한 뒤 여성들의 목소리를 부숴버리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의 성기는 남성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2016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성기 크기를 두고 공개적으로 놀린 사람은 경쟁 후보였던 마코 루비오였다. 한국 남성들이 자주 사용하는 ‘주옥같은’ 비속어들을 떠올려보자.)

남자는 다 짐승, 남자는 애 아니면 개, 남자는 정신연령이 낮다 등은 남성비하로 여겨지기는커녕 남성 사회가 적극적으로 유포한다. 불성실한 감정노동과 관계에서의 게으름, 성차별적 인식 등을 ‘정상적’인 현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지속가능한 권력’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퇴행을 자처한다.

이름 짓는 권력과 함께 문화정치의 한 형식은 ‘공식적 시각’(official version)을 만들어내는 권력이다. 이 공식적 시각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상식을 규정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성차별주의자들은 ‘남성혐오’라는 언어를 적극적으로 유통하여 스스로를 피해자화한다. 어리석은 광기는 언론을 통해 꽤 비중 있는 여론으로 둔갑한다. 마치 대립하는 가치인 양 여성혐오-남성혐오의 구도를 만든 언론들의 행태가 수년간 반복되어왔다. 헛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행동은 차별에 공모하는 것이다.

최근 양궁선수 안산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일방적인 성차별적 사이버 공격을 두고 많은 언론이 ‘페미니스트 논란’, ‘젠더 갈등’, ‘페미 논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등으로 표현했다. ‘논란’과 ‘갈등’이라고 이름 붙이던 언론의 태도가 바뀌던 시점은 나라 밖을 의식하면서부터다. 안산 선수가 3관왕을 이룬 7월30일께부터 국내 언론에서도 ‘온라인 학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몇몇 외신에서 ‘성차별적 학대’(sexist abuse) 혹은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라고 명명하자 국내 언론도 이를 수용한다. 자국 여성들의 목소리는 신경 쓰지 않으나 외신이라는 권위는 신경을 쓰며 언어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온라인 학대 제정신인가”(<동아일보>), “온라인 학대에 당당히 맞섰다”(<에스비에스>). 이제라도 정확하게 표현해서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언젠가 아프리카의 성소수자 차별의 역사가 어떻게 유럽 식민지배와 관계있는지를 언급하는 글을 쓰면서 나는 이 문제의 전문가인 아프리카 사회학자의 연구를 인용했다. 편집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아프리카 학자 말고’ 다른 서구 학자의 말을 덧붙여 달라고 요청했다. 무난한 진행을 위해 나는 아프리카와 유럽 학자의 목소리를 함께 넣었다. 학자의 국적이 권위를 준다. 아프리카 관련 연구인데 아프리카 학자의 이름이 덜 신뢰받는다. 이런 사례는 여성의 목소리가 겪는 일과도 비슷하다.

한국 남성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집게손가락 모양’ 이미지를 시설물에 사용했다는 일부의 억측에 전쟁기념관이 올린 해명글. 전쟁기념관 누리집 갈무리
<비비시>(BBC) 방송은 29일 안산 선수가 쇼트커트로 인해 ‘온라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문화적 ‘입마개’를 씌우기

양궁선수 안산의 머리 모양을 두고 엉뚱한 공격을 퍼붓던 이들은 손가락 놀이만큼 지지받지 못하자 ‘쇼트커트 때문이 아니라 페미 용어를 사용해서’라고 주장한다. 제1 야당의 대변인마저 “이 논란의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에 있고”라며 여성 운동선수를 향한 사이버 공격을 정당화한다. 대변인의 인식과 어휘 선택이 참으로 우려스럽다. 공당의 대변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성차별적 태도를 취하며 ‘대변’할 수 있는 배경은 당 대표인 이준석이 보여준 그간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현실을 반영한다기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을 만든다.

그렇다면 ‘남성혐오 용어’는 무엇인가. 오조오억, 허버허버, 웅앵웅 등이라고 한다. 나는 이런 언어들을 거의 대부분 논란이 일어난 뒤 알게 된다. 이 언어들의 기원을 굳이 따져보면 처음에는 인터넷상의 신조어였으나 여성들이 남성을 기분 나쁘게 할 때 사용하게 되면 ‘남성혐오’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여성들의 언어를 모두 남성혐오로 규정하여 입을 틀어막으려는 전략이다. 여성들이 현상을 묘사하거나 반영하여 생각, 느낌, 개념을 전달하는 언어를 만들거나 사용하는 것, 다시 말해 대표적인 재현 체계인 언어를 만들고 유통하는 행위를 억압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문화적 입마개를 씌우는 행동이다.

‘잔소리하는 사람에게 씌우는 입마개’(scold’s bridle)는 18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 주로 사용한 고문 도구이다.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여성에게 주로 사용되었다. 쇠로 만들어진 이 도구를 머리에 씌우면 톱니바퀴처럼 생긴 부분이 입에 맞춰져 혀를 누르기 때문에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은 여성에게 물리적으로 입마개를 씌우진 않지만 여성의 언어를 검열하여 각종 꼬리표를 붙인다. 현재 한국의 성차별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의 개념을 ‘남성혐오자’라고 왜곡해서 고정관념을 만든 뒤, 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를 검열하며 마음 놓고 혐오하고자 한다. 여성의 입을 향한 학대는 시대에 따라 방식이 달라질 뿐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적어도 공적인 영역에서 혐오가 승리하는 경험을 축적하도록 돕지 말아야 한다. 혐오를 도구화하는 정치가 아니라 이 혐오에 침묵하지 않는 정치를 보는 것, 지금 너무 간절하다.

예술사회학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2020) <타락한 저항>(2019) 등의 저자.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평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비평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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