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 보면 한 밤에 등골이 오싹"..악마적 여고생 복수극에 열광하는 이유 [숨은 명작 찾기]

김연주 2021. 8.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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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그녀의 이름은 난노"
악마적 매력의 여고생의 복수극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촤근 시즌 3 제작 확정

욕망은 부추기고, 거짓은 부풀리고, 죄는 더 큰 죄로 돌려준다.

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 '그녀의 이름은 난노'를 요약하자면 '악(惡)이 악(惡)을 심판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로 주인공인 난노가 매회 새로운 학교로 전학 가면서 에피소드가 시작하는데요. 여학생을 강간하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협박하는 선생님. 위기 상황에서 살기 위해 서로를 사지로 내모는 학생들. 작품을 표절해 수상하는 영재. 예쁜 친구를 질투해 저주하는 소녀. 학교에서 일어날 법한 크고 작은 악행이 매회 에피소드를 장식합니다.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난노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을 파멸시키죠.

악마적 매력의 여주인공, 난노

출저=넷플릭스
사실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은 존재는 치차 아마따야꾼이 연기하는 주인공 '난노'입니다. 검은색 똑단발에 뚜렷한 이목구비. 청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도 보이고, 공포영화의 처녀귀신처럼도 보이는 이중적인 얼굴. 그녀는 이 드라마의 브랜드이자 매력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한 미소와 "안녕 난 전학생 난노야"라는 말로 늘 드라마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말은 언제나 시체나 피웅덩이 위 악마처럼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는 난노의 사악한 웃음과 유혈이 낭자한 교정으로 끝나죠.

난노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능력을 선보이는데요. 죽여도 죽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비밀이나 거짓은 귀신같이 알아내죠. 선인가 악인가. 신의 사자인가 아니면 악마의 하수인인가. 난노의 정체가 회를 거듭할수록 궁금해지는데요. 제작자 쪽에서는 일찌감치 인터뷰를 통해 답을 내놨습니다. 난노는 '악마의 딸'이랍니다.

악마인 난노가 '심판자'이기에 '개과천선'은 없습니다. 오로지 '인과응보'만이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악'은 더 큰 '악'으로 되돌아옵니다. 협박받은 사람은 똑같이 협박을 받게 됩니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부릅니다. 시즌 1화에서 성관계 영상으로 학생을 협박하는 선생님의 집에 찾아가 같은 방식으로 협박해 대갚음하는 난노는 시청자로 하여금 쾌감을 주죠. 판타지를 가미한 현실을 그리다 보니 매우 잔인하고 때로는 기괴스러운 복수도 이뤄집니다. 시즌2 1회 에피소드 '임신'이 대표적입니다. 여학생들을 임신시키고 나 몰라라 하는 남학생은 남자임에도 똑같이 임신하고 버려지는 결말을 맞습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 대중문화 개방이나 표현 수위 면에서 꽤 자유로운 편입니다. 약한 고어물 수준의 잔인한 장면도 많고 살인이나 폭력 등이 매회 나오기 때문에 보시기 전 이점 유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악이 악을 심판…용서는 없다

일반 복수극의 결말은 그래도 서로 용서하거나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인데요. 이 드라마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드라마가 일반적인 '복수극'과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가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이 난노를 좋아하자 화장실 벽에 저주의 글을 쓰고, 저주는 현실이 된다. /캡처=넷플릭스
드라마에는 끔찍한 악인이 아닌 평범한 보통의 악한 사람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10대 때 누구나 느낄 법한 질투, 남들보다 잘나고 싶다는 우월감. 아주 작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도 난노를 만나면 증폭됩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듯, 악의는 그들을 가파르게 파멸의 길로 안내하죠. 이런 욕망은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 그들의 파멸에 통쾌하다기보다는 불편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악의의 씨앗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성찰하게 되기도 하고요.

드라마는 악마적인 존재를 통해 진부한 복수를 영리하게 파고듭니다. '악인'의 개과천선에 대해 의심을 한 번 더 해보는 식입니다. 정말 그는 실수였을까? 정말 그는 반성한 걸까? 실수로 살인을 했다고 칩시다. 살인자는 돌아가면 살인을 하지 않을까요? 난노를 살해한 친구들은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난노'를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죽입니다. 난노는 이렇게 일침하죠.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를 하지만,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리고 또 사과한다"고. 사연이 없는 악행이 어디 있을까요. 난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참 복잡하다. 사랑마저 이기적인 행동에 변명이 될 수 있다"고.

태국도 한국도 사적 복수에 열광

매회 기괴한 이미지들과 고어 수준의 잔혹한 연출이 특징이다. /출저=넷플릭스
한국이고 태국이고 요즘 드라마의 흥행 코드는 '복수'인 듯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 같은 사적 복수에 열광할까요?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더 이상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드라마 '악마판사'가 화제인데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가 주된 배경인 드라마입니다. 이 역시 대중이 법률 시스템이 아닌 직접 복수자로 나서죠. 드라마는 기획 의도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출저=tvN
"사람들은 더 이상 인권, 소수자 보호, 다양성 존중,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믿지 않는다. 냉소한다. 강력한 힘으로 이 답답한 세상을 누군가 쓸어버리길 바라는 목소리가 커져간다. 기존의 시스템은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부패, 무능, 엘리트주의, 관료주의로 오작동을 일삼아왔기 때문이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분노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제대로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드높다. 사람들은 '사이다'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타 들어간다."

사회 시스템에 정의를 기대할 수 없을 때, 다소 위험하고 과격한 다른 방식의 정의 구현을 꿈꾸게 된다는 건데요. 국적도 구성도 다르지만, '그녀의 이름은 난노'의 제작 의도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태국은 최근 여러 사회문제를 복합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큰 나라인데요. 2018년 크레디트스위스의 글로벌 웰스 리포트(Global Wealth Report)에 따르면 태국은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0.2로 아세안 국가 중에서 1위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우크라이나(95.5), 카자흐스탄(95.2), 이집트(90.9) 다음으로 4위라고 하네요.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상황입니다. 현재 태국에서는 민주화와 함께 쁘라윳 짠오차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수개월 째 진행되고 있죠.

학교를 배경으로한 '괴담' 같은 '현실'

배경이 학교인 것도 드라마의 기괴함을 더합니다. 판타지스러운 설정에 학교라는 배경이 현실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부여합니다. 학교는 공포영화의 단골 배경인데요. '괴담 같은 현실'이 즐비한 공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흉악한 이야기들이지만, 한국에서도 벌어졌던 사건들과 아주 유사합니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와 같은 문제는 물론이고, 영상 촬영 유포를 빌미로 성을 착취하는 학생들은 N번방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로지 최고가 될 것만 요구하는 엘리트주의와 학생들 사이의 빈부격차로 인한 권력관계 등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아이들의 문제로 치환시킬 때 그 병폐가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주인공인 난노를 제외하면 배경이나 등장인물도 매번 바뀝니다. 또 독특하게 회마다 감독이 다릅니다. 난노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빼면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에피소드마다 편차도 큰 편입니다. 추천하는 회차는 시즌1의 1화. 악인을 쥐 몰이하는 난노의 악마적인 매력이 제일 잘 느껴지는 화인 것 같습니다. 6화, 7화의 '증오의 벽'은 우리가 품는 악의가 힘을 가지게 되면 어떤 지옥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현재 시즌2까지 완결되었고, 인기에 힘입어 최근 시즌3도 확정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난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현재는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숨은 명작 찾기 코너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국적의 영화와 드라마를 주말에 소개합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려운 요즘 방 안에서 세계의 다양한 명작들을 만나 보는 건 어떨까요?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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