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열광 이끌어낸 '펜트하우스3', 그 뒤에 남은 씁쓸함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8. 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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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드는 막장? 중국 '펜트하우스' 인기에 웃을 수만은 없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우연히 미쳤어!" Mnet <걸스 플래닛>에 참가한 중국 소녀 구이저우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설명하려고 어색한 한국어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게 무슨 드라마인 지 알쏭달쏭한 다른 친구들에게 어떻게든 설명하려 또 다른 중국 출신 참가자 린천한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그가 말한다. "오윤히 미쳤어!" 알고 보니 <펜트하우스>을 말하는 거였다. 린천한은 "오윤희 왜 여기 있어?"하고 성대모사까지 하며 천서진(김소연)의 연기를 흉내 낸다.

중국 소녀에게 좋아하는 드라마(아마도 한국드라마 중 최근 떠오르는 드라마를 묻는 것이었을 게다)를 묻는 질문에 <펜트하우스>가 거론되는 건 의외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펜트하우스>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한한령 규제 때문에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고 인터넷 사이트로 공개되고 있지만 중국 누리꾼들에게는 최대의 화제작이다.

여기에는 물론 이미 <아내의 유혹>으로 중국에서도 이름값이 분명한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라는 후광효과가 있다. 특히 엄청난 속도감을 보여주는 김순옥 작가 특유의 스타일은, 중국에서도 몰입감과 쾌감,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평가된다. 최근 시즌3로 오면서 '쌍둥이 하우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죽은 자들이 계속 돌아오는 좀비 설정으로 시청률도 시즌1,2에 비해 뚝 떨어진데다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우리와는 사뭇 반응이 다르다.

결국 <펜트하우스3>에서 등장과 함께 사망한 줄 알았던 로건 리(박은석)는 화려하게 부활해 처절한 복수를 이어가고 있다. 그것이 시청자들이 원하는 사이다 전개라는 걸 알겠지만, 개연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는 설정의 반복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점점 냉담해지고 있다. 최근 마지막 14회 탈고를 마쳤다는 김순옥 작가는 "기적 같은 드라마"라고 자평했지만, 사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라는 반응들도 나온다.

중국에서의 <펜트하우스> 열광은 그래서 다소 씁쓸한 면이 있다. 물론 중국 시청자들도 이 드라마가 '막장'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시청자들이 <펜트하우스>를 보는 관점은 재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종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기 때문에 막장드라마의 폐해 같은 건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닌 것.

자세한 중국 시청자들의 반응들을 보면 그래서 이 열광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막장이지만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과하게 막장이지만 너무 재밌어", "막장에 꿀잼", "막장인데 끝까지 다 봤어" 같은 반응들은 그래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보면 괜찮다"거나 "한드는 막장 드라마야 말로 재밌지" 같은 반응은 결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중국 시청자들이 보는 <펜트하우스>는 재미와 자극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그 지점에서 두 가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하나는 우리 일 아니니 마음껏 막장을 즐기는 심리의 만끽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드라마는 막장'이라는 식의 깎아내리는 시선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웰메이드 한국드라마들이 중국에서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드라마가 주는 '안도감(?)'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물론 '길티 플레져'를 진심으로 즐기는 중국 시청자들도 있고, 중국인 특유의 '과장된 상상력'을 어느 정도 웃으며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막장이라고 해도 연기자들의 호연만큼은 인정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벌어지는 구조적인 문제와 이를 뒤집는 복수극의 카타르시스를 말하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시즌2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펜트하우스>는 막장이어도 보게 되는 막강한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시즌3로 오면서 더 이상 나갈 길 없는 스토리를 억지로 끌고 가는 듯한 전개는 그간 빠져들어 봤던 시청자들조차 이탈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복수극 서사를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의 조종에 의해 인물들이 움직이고(심지어 되살아나고) 거기에 인물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사들을 늘어놓는 수준이다. 왜 그렇게 심수련(이지아)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냐는 주단태(엄기준)의 질문에 갑자기 천서진이 과거 심수련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러고 싶었다는 식의 '억지로 끼워 넣은' 합리화가 등장하는 식이다.

최근 들어 K드라마라는 지칭이 생길 정도로 한국드라마는 글로벌하게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펜트하우스>처럼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전개로 개연성도 없고 완성도는 갈수록 떨어지는 막장드라마에 대한 열광을 어떤 성취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극적인 전개는 19금 시청제한 속에서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개연성 파괴의 막장드라마는 그 폐해가 만만찮다. 고심하는 작가들에게 줄 상대적 박탈감도 크고, 무엇보다 K드라마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에서의 <펜트하우스> 열광에 씁쓸함이 남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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