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0도] "내 물건이 북한으로 갈 것 같아요" 그 아찔한 순간

김서연 기자 2021. 8. 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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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맥 오배송 헤프닝으로 본 남북한의 우편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미국 뉴욕 애플스토어. (자료사진) © AFP=뉴스1

(서울=뉴스1) 김서연 기자 = "애플 공홈이 물건을 북한으로 오배송했는데?"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글이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요약하자면 내용은 이렇다.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 '남한 전라남도 순천시'로 주문한 아이맥 제품이 '북한 평안남도 순천'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해외 업체의 배송조회에는 평양을 찍고 배달이 마무리되는 모든 과정이 기록됐다.

오배송 헤프닝은 서로 "내 탓"이라고 말하는 판매처 및 배송업체의 대응과 쏠쏠한 보상을 받은 듯한 당사자의 후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토록 깔끔한 대처를 보면서 정작 내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경을 폐쇄하고 내부 이동도 완전히 제한됐다는 북한에 대한 배송이 잘 이뤄지고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었다.

◇ 손편지에 머무르는 북한, 넘어선 남한

'아이맥' 배송은 낯설었어도 북한의 우편 서비스는 꽤 눈에 익숙하다. 당이 발행하는 기관지나 선전매체에는 여러 부문에서 고생하는 근로자들이 자신들을 응원하는 위문편지를 받고 즐거워한다는 내용이 종종 보도되기 때문이다. '탄원'에 나선 청년이 "잘 지내고 있다"며 가족들에게 투철한 신념을 자랑하는 편지가 공개될 때도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각 지역의 '당 대회 결정 관철' 현장에 위문편지가 속속 도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위문편지는 학생들이 보낸 것으로, 이 편지를 받은 노동자들의 '전투적 사기'가 올랐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그만큼 북한의 '대세'는 아직은 손편지인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제작된 북한 영화 '보증'에는 초반 한 남성이 아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고뇌에 빠져드는 장면이 나온다. 심각한 편지를 받고 고민에 빠져드는 그의 모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노동자나 군인 등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올해 초 인민군에 위문편지를 쓴 송림소학교 학생 박평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다음 인민군대에 나가면 이런 편지를 받게 되겠지요? 야, 그날이 빨리 왔으면…." 우리 식으론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이 소년이 최소 5년 뒤 군인이 된다면, 그때도 북한 사회는 변함없이 손편지에 주력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남한은 어떨까. 초등학교 시절,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군인들을 '아저씨'라고 칭하며 "감사합니다"라는 위문편지를 쓴 기억이 남아 있다. 이런 위문편지 쓰기가 아직 진행된다면 과거에 비해 다분히 요식행위적인 성격이 강할 듯하다. 손편지보다 군대 인편(인터넷 편지)이라는 더 간단한 방식도 생겨났다. 그런데 일단 연락할 급한 일이 생겼다면 우리는 펜을 들기보단 빠르고 정확한 '톡'을 빨리 보내거나 서둘러 전화를 걸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인민군대에 위문편지를 보내는 송림시 송림소학교 박평일 학생의 사연을 조명했다. 신문은 소년단원인 이 학생이 인민군 병사들의 모습에 미래의 자신을 투영해 편지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 "내 택배가 북한으로"…'뜻밖의 선물'이 될까

북한 매체의 위문편지 보도를 보다 보면 뭔가 부족하다 싶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날을 맞아 김정은 당 총비서가 보낸 학용품 선물에 기뻐하는 북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선물을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동일한 것 같은데 정작 표현은 글뿐인 응원으로 끝나버려서다. 북한 주민들은 택배를 안쓰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탈북민 말에 따르면 내부에서 택배 이용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해외에서 북한으로 우편물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몇 년 전 한 외신은 '북한으로 소포를 보내는 일은 쉽진 않지만 가능하긴 하다'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소개했다. 첫 번째로 언급한 내용은 "미국에서 발송은 삼갈 것"이다. 불가능은 아니나 국제사회에서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은 그만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 우편물 서비스에서 선두는 독일계 기업 DHL로, 온라인에서 북한 배송을 검색하면 제일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한국으로 가야 하는 물건이 '북한'으로 배송될 뻔한 아찔한 사고가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반드시 'south korea'(남한)이라고 확실하게 적어야 한다는 팁도 공유한다.

반면 남북한 사이에서 오배송 우려는 접어둬도 무방할듯싶다. 단절된 남북은 우편교류가 막혀 있다. 국가보안법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남북교류협력법에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는 예외를 제외하고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장관에게 미리 신고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아울러 물건이 잘못 배송돼 북한으로 갔다 하더라도 북한 주민들한테 선물이 되는 상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DHL이 북한으로 보낸 아이맥 역시 우리의 우정사업본부쯤에 해당하는 북한의 '체신성'에서 완전히 검수된 뒤 반송 조치됐다고 한다.

남북이 통신연락선을 재가동한 27일 오후 통일대교와 이어진 경기도 파주시 일대 자유로에서 차량들이 통행하고 있다. 남북 간 통신선 복구는 약 13개월 만에 이뤄졌으며 북한 측은 앞서 한국 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작년 6월9일부터 남북 군 통신선을 이용한 우리 측의 통화 시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2021.7.27/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 낯익은 지명…멀지 않지만 서로 모르는 남북한

전남 순천이 아닌 평남 순천으로 가버린 배송 사고는 남북한이 가깝고 지명도 비슷하단 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남북이 같은 지명을 쓰고 있는 강원도의 이북을 '북한 강원도'라고 소리내 말할 때 드는 생경하면서도 묘한 기분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체신성을 사람의 이름으로 오해하는 모습을 보면 분단 후 떨어져 지낸 기간만큼 서로를 모르게됐다는 사실도 재차 깨닫는다.

지난 3월 한 출판사는 남한의 시민들이 '북녘의 동포'에게 쓴 편지 모음집을 출간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북한 주민들을 향해 쓴, '꿈같은 편지'라고 표현한 제목만큼 꿈에서나 가능할 '전할 수 없는 편지'다. 아슬아슬한 선타기를 하는 남북 관계 속에서 주민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날은 상상에서조차 멀다. 남한 주민들이 북한의 '탄원'이라는 말의 뜻을 알고, 그들의 농업 생산을 응원하는 위문편지를 쓰는 날이 올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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