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년째 컨테이너 생활.."동정받는 것 같아 힘들어"

천정인 2021. 8.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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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수해 1년' 배·보상 늦어지며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수해 1년' 컨테이너 임시 주택에서 생활하는 수재민 (구례=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오는 8일이면 전남 구례 지역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한 지 1년이 된다. 사진은 1년이 되도록 컨테이너 임시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재민을 지난 5일에 만난 모습. 2021.8.8 iny@yna.co.kr

(구례=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암담한 건 똑같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전남 구례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1년째 수재민 임시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문창남(55) 씨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집 잃은 어려움을 구차하게 말로 표현하기 싫다고 말하는 문씨의 표정과 눈빛, 억양에서 지난 1년간 아물지 않은 짙은 상처가 배어 나왔다.

컨테이너 임시 주택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제사용품은 물론 제대로 된 식기조차 없었던데다 마음의 여유도 없던 탓에 돌아가신 부친의 제사조차 챙기지 못했다.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운 일상생활은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그는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비하면 이걸 불편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며 "번듯한 집에서 사는 건 아니니까요"라고 했다.

문씨는 수해를 입기 전 낡은 한옥이었지만 아내와 두 아들, 노모까지 다섯 식구가 살기엔 충분한 보금자리가 있었다.

섬진강과 서시천 물이 넘칠 것이라고 예상했던 문씨는 미리 가족들을 대피소로 보낸 뒤, 이웃에 사는 할머니 4명을 챙겨 대피소로 안내했다.

'수해 1년' 일상은 돌아왔지만… (구례=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오는 8일이면 전남 구례 지역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한 지 1년이 된다. 사진은 지난해 침수된 피해 지역(왼쪽)을 지난 5일 다시 촬영한 모습.2021.8.8 iny@yna.co.kr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땐 이미 가슴까지 물이 차올라 다른 소지품을 챙길 수 없었던 문씨는 자녀들의 어렸을 적 사진을 미리 챙기지 못했던 게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 했다.

며칠 뒤 물이 빠지자 어떻게든 살아보려 흙탕물로 엉망이 된 집을 정리하고 물기를 제거해봤지만 이미 물을 가득 먹은 나무 기둥이 뒤틀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태였다.

수리하는 게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 비쌀 것이라는 한옥 수리 전문가의 말에 문씨는 눈물을 머금고 집을 철거해야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보금자리를 잃은 문씨 가족은 5평 남짓한 컨테이너 임시 주택에 입주하게 됐지만 다섯 식구 모두가 임시 주택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문씨의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군대를 다녀온 대학생 큰아들은 자의반 타의반 복학하지 못하고 광주로 떠나 공장에 취직했다.

한순간의 재해가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문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집 없는 불편한 환경이 아니라, 말뿐이었던 정관계 인사들의 '공수표'였다.

수해 직후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찾아와 무엇이든 지원해 줄 것처럼 약속해놓고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나 몰라라 하는 행태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당시엔 이 지역에 와서 피해에 대한 것, 불편한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처럼 했다"며 "언제 우리가 모든 걸 다 해결해 달라고 했나. 부당하게 피해를 본 부분을 해결해 달라는 것인데 그들은 말뿐이었다"라고 비판했다.

1년 가까이 컨테이너 임시주택 생활하는 수재민 (구례=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오는 8일이면 전남 구례 지역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한 지 1년이 된다. 사진은 지난 5일 촬영한 구례읍 공설운동장 공터에 마련된 수재민 임시주택의 모습. 2021.8.8 iny@yna.co.kr

임시 주택이 설치된 첫날, 도지사와 군수가 한번 다녀간 뒤엔 1년이 되도록 얼굴 한번 비치지 않았다고 했다.

"임시 주택이라도 마련해줘서 고마운데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다독거려주는 게 없더라고요."

이런 마음이 반영된 탓인지 가끔 수재민들에게 제공되는 물품들도 고깝게 보였다.

문씨는 "군청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떤 날은 문밖에 쌀을 한 포대기 툭 놓고 가고, 어떤 날은 감을 한 박스 올려놓고 가기도 한다"며 "마치 적선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임시 주택은 공설운동장 공터에 마련됐는데 그 주변으로 운동을 온 사람들이 임시 주택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서 '동정 어린 시선'을 느낀다는 문씨는 "그럴 때마다 무척 창피하다"고 털어놨다.

하루라도 빨리 임시 주택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암담하다고 했다.

손해 책정액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마저도 몇 퍼센트나 받게 될지 모르는 상황.

보상 또는 배상이 언제 이뤄질지 기약조차 없는데 매물로 내놓은 집터 역시 팔리지 않아 새로운 거처를 구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배·보상금이 적어서 그걸로 어디 가서 집을 구하겠나. 그걸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 예전에 살던 집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저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여기 남아계신 대부분은 오갈 곳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수해 당시 18 가구가 입주했던 임시 주택에는 1년이 지난 현재 문씨를 포함해 6∼7 가구만 남아있다.

깨끗하게 정돈된 구례 5일 시장 거리 (구례=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오는 8일이면 전남 구례 지역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한지 1년이 된다. 사진은 지난해 수해로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던 구례 5일 시장(위쪽)을 지난 5일 촬영한 모습. 2021.8.8 iny@yna.co.kr

피해가 컸던 인근 구례 5일 시장 상인들에게도 1년 전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언제 수해를 입었냐는 듯 시장은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지만 피해 배·보상이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으면서 속앓이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한 상인은 "수해로 가게 이곳저곳을 고치고, 새로 물품을 들여오느라 빚을 냈는데 여전히 갚지 못하고 있다"며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손님들도 잘 찾아오지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회 관계자는 "시장은 생계와 직결된 곳이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고충이 크다"며 "그래도 다시 한번 일어서보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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