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래의 인더스트리]반도체 산업 '첨병' 팹리스

강경래 2021. 8.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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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X세미콘 대전 본사 전경 (제공=LX세미콘)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 최근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반도체 업체들이 ‘깜짝’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반도체사업에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22조 7400억원과 6조 9300억원이었습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18.2%와 5.4% 늘어난 수치입니다. 영업이익률은 30.5%에 달했습니다.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동기보다 19.9%와 38.3% 늘어난 10조 3217억원과 2조 6946억원이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26.1%였죠. 이렇듯 반도체 대기업을 중심으로 호실적이 이어지는 것은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는 이른바 ‘슈퍼사이클’(초호황) 때문인데요. 이런 이유로 반도체 투자가 늘어나고 반도체 장비기업 역시 수혜가 예상된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아울러 반도체 산업에 있어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팹리스’ 분야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장 없이 반도체 개발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팹리스는 ‘반도체 공장’을 의미하는 ‘팹’(Fab)과 ‘없다’는 의미인 ‘리스’(less)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반도체 공장이 없이 반도체 개발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을 의미합니다. 생산은 철저히 외주에 맡기는데요. 팹리스 업체들로부터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업체가 바로 ‘파운드리’입니다. 요즘 언론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대만 TSMC가 대표적이죠. 팹리스는 반도체 개발에서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와 비교해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합니다. 이런 이유로 스마트폰과 PC 등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T(정보기술) 트렌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게 강점이죠.

이러한 강점을 앞세워 팹리스 시장은 매년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입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전 세계 팹리스 시장은 2016년 827억 5400만달러에서 이듬해 914억 2100만달러, 2018년 973억 5900만달러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1174억 4300만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 1000억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팹리스는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30%가량을 점유합니다. 팹리스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죠. 바로 미국 퀄컴입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포함해 통신용 반도체에 주력하는 퀄컴은 지난해 매출액 193억 57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팹리스 시장에서의 점유율 16.5%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이어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의 퀄컴’을 꿈꾸는 팹리스 업체들이 있습니다. LX세미콘(옛 실리콘웍스), 텔레칩스, 제주반도체, 어보브반도체 등 200여 개 팹리스 업체들이 국내에서 활동 중인데요. 이 중에서 단연 두각을 보이는 업체가 LX세미콘입니다. LX세미콘은 LX그룹 계열사인데요. LX그룹은 지난 5월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뒤 설립된 그룹사입니다. 구본준 전 LG 부회장이 오너 회장으로 LX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LX세미콘은 종전 실리콘웍스에서 7월에 공식적으로 현재 이름이 됐죠.

LX세미콘이 주력하는 분야는 디스플레이구동칩(DDI)입니다. 디스플레이구동칩은 LCD(액정표시장치)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디스플레이에 들어가 영상 데이터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구현하는 반도체입니다. LX세미콘은 디스플레이구동칩을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중국 비오이(BOE), 차이나스타(CSOT) 등 국내외 유수 디스플레이 업체들에 공급하는데요. 최근 디스플레이구동칩은 전 세계적으로도 수급난을 겪으면서 소위 ‘부르는 게 값’이 된 제품이기도 합니다. 증권가에서는 LX세미콘이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보다 61%와 241% 증가한 1조 8700억원과 3217억원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팹리스 시장, 한국 차지하는 비중 1.5% 불과

자동차용 반도체에서는 텔레칩스(054450)가 강세를 보입니다. 텔레칩스는 현대차·기아에 AVN(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 프로세서를 활발히 공급합니다. 요즘 텔레칩스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MCU’(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에 있습니다. MCU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와 GM, 포드, 폭스바겐,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까지 했는데요. 이 제품은 네덜란드 NXP반도체와 일본 르네사스, 미국 TI 등 해외 업체들이 과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텔레칩스가 MCU를 출시한 것이죠. 텔레칩스는 MCU를 국내외 유수 자동차 전장 업체들에 공급한 뒤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연내 자동차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는 제주반도체(080220)가 있습니다. 통상 메모리반도체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을 떠올리는데요. 제주반도체는 통신장비와 서버 등에 들어가는 메모리반도체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을 거둔 사례입니다. 지난해 매출액은 코로나19 악재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1.4% 늘어난 1105억원을 올렸습니다. 매출액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2%에 달하는 수출주도형 강소기업입니다. 최근에는 자동차 전장에 쓰이는 메모리반도체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함께 팹리스 업체들도 주목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우리나라 경쟁력은 여전히 미약하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옴디아에 따르면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합니다. 이는 1위인 미국 56.8%를 비롯해 대만 20.7%, 중국 16.7% 등과도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반도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R&D(연구·개발) 비용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영세한 규모인 팹리스 업체로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기에 반도체 설계를 위한 인력과 인프라마저 대기업에 편중돼 있어 자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한계로 국내 팹리스가 해외로 매각되는 사례도 매년 발생합니다.

그나마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인해 국내외 대기업들이 장악해온 반도체 분야에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R&D 자금 등에 있어 과감한 지원정책을 통해 국내 팹리스 산업을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때입니다.

강경래 (but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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