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靑 '추석물가' 동원령..경제부처에선 '행정지도 스트레스' 호소

세종=최효정 기자 2021. 8.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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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초 “추석 물가를 각별히 챙기라”고 주문한 이후 2%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넉 달 연속 지속되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각 경제부처들에도 주요 민생경제 관련 품목 가격안정 동원령이 떨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계란, 과일 가격과 흰 우유 등 밥상물가 품목 가격 안정화를 위해 행정지도에 나섰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계란 담합을 들여다보겠다며 경고했다. 오는 9월 결정되는 4분기 전기요금을 두고 산업통상자원부는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동원령에 일부 부처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물가안정을 위해 가격 인상을 막으라고 압박하는 기획재정부와 원재료값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주장하는 업계 사이에서 방패막이 신세가 됐다는 푸념도 나온다. 원유연동제·연료비연동제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우유나 전기료도 인상되야 하는데, ‘물가안정’을 이유로 무작정 가격인상을 틀어막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YONHAP PHOTO-3136> 두 달 새 최대 20%오른 달걀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22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관계자가 달걀을 진열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잠잠해지면서 계란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시중에서 팔리는 계란 제품의 절반 가까이는 가격 오름세를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7.22 jjaeck9@yna.co.kr/2021-07-22 13:58:4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대 인플레에 부처별로 ‘물가안정’ 동원령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중 최고치인 2.6%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하반기부터는 물가가 2% 이내로 안정화될 것이라는 정부 전망은 빗나갔다. 한은이 제시한 물가안정목표치(2.0%)도 훌쩍 넘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물가 불안이 확대되자 정부는 ‘물가 잡기’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작황 부진과 폭염으로 인한 폐사 등으로 서민 체감이 큰 밥상 물가가 크게 오르고,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세는 천정부지인데다 수요회복으로 서비스 가격이 뛰는 등 “안오르는게 없는” 상황에 민심 역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조류독감(AI)가 종식됐는데도 가격이 내리지 않는 계란을 놓고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달걀은 필수 먹거리인 만큼 소비자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생산단계, 유통단계, 판매단계를 점검하라”고 부처들에 주문하기도 했다. 계란값 잡기에는 물가 총괄 부처인 기재부와 함께 농림부가 나섰고,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담합 가능성을 살펴보겠다며 가담한 상태다.

<YONHAP PHOTO-3950> 2분기 생필품 가격 평균 3.1% 올라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27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2분기 생활필수품 38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작년 동기보다 평균 3.1% 올랐다고 밝혔다. 이중 달걀이 70.6%로 가격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물가감시센터는 서울시 25개 구와 경기도 10개 행정구역 내 백화점, 마트, 슈퍼마켓 등에서 매월 셋째 주 목∼금요일 생활필수품과 공산품의 가격을 조사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신선식품 코너의 모습. 2021.7.27 scape@yna.co.kr/2021-07-27 16:02:40/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결국 억지쓰라는 것”…부처 내부엔 ‘피로감’ 팽배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물가안정’ 동원령에 각 부처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원자재가 상승 등 비용이 높아지거나 조류독감(AI) 등 재해로 수급량이 줄어들어 가격을 인상하거나 유지해야 한다는 업계 입장과 물가 관리에 나서라는 정부의 압박 사이에서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라서다. 연료비연동제와 원유가격연동제 등 비용 상승이나 하락을 최종 가격에 반영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점도 정부의 물가 싸움이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농림부는 계란 가격인하를 위해 양계업계 등을 설득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산란계 폐사 등에 따른 수급부족이 본질이기 때문에 “가격을 내리라”고 마냥 요구할 수 없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생산 비용 상승으로 낙농업계 역시 흰 우유 가격을 올린다는 입장인데, 우유의 경우 원유가격연동제가 실시되고 있는데다 정부 지도에 따라 가격인상을 1년 유예한 상황이라 이를 철회하라는 농림부 중재를 낙농업계가 거부하고 있다.

계란 담합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공정위 내부에서는 “김동수 위원장 재임 시절이 떠오른다”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반응이 나온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담합 조사를 해야하는 상황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로 치솟으면서 ‘물가안정’이 주요 국정목표로 대두되자 당시 김동수 위원장은 공정위가 물가안정기관임을 자임하며 담합 조사에 직원들을 적극 투입했다. 이에 라면, 김치, 콜라, 캔커피 등 식음료 가격을 올리는 업체들의 담합을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최종적으론 법원에서 줄줄이 패소하는 쓴 결말을 맞았다. 이같은 이력때문에 정부 민원처리반 역할을 해야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됐다.

산업부 역시 전기료로 골치가 아프다. 연료비연동제에 따라 국제유가 상승분을 반영해 전기료를 올려야 함에도, 물가안정 등을 이유로 올해 3분기 연속 전기료를 동결해왔는데, 4분기 전기요금을 두고서도 ‘동결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에 가중치가 높은 전기료가 오를 경우 물가의 연쇄적 상승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전기를 생산하는 한국전력 등 기업은 정부 외에도 외국인 등 다른 대주주들이 있는데, 무턱대고 전기요금 동결을 이어갔다가는 주주들이 한전을 배임으로 고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의 이같은 논리에도 그저 ‘물가안정’이라는 표어만 들이대야 한다는 무력감이 산업부 내부에서 팽배하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국정 주요목표가 ‘물가안정’이 될 때는 가격인상 요인을 반영하겠다는 업계측 주장을 마냥 틀어막아야 하는데, 이같은 행정지도를 거듭하는 것이 사실상 억지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아 피로감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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