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화폐가치 90% 급락에 종교갈등까지…
정파 다툼에 후속 내각 출범 미뤄져
아직 사고원인 규명못해 국민 분노
4일(현지 시각) 지중해에 접한 중동 국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거칠게 충돌해 모두 8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수천명의 시위대는 베이루트 항만의 대폭발 사고 1주기를 맞아 투명한 수사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레바논은 작년 8월 4일 베이루트 항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초토화됐다. 214명이 사망하고 약 6000명이 부상당한 국가적 재난이었다. 이재민은 30만명에 달했다. 이후 1년이 지났는데도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고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했지만 정파 간 권력 다툼으로 인해 아직 후속 내각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고, 사고 원인 규명도 지지부진해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특히 폭발 사고 이후 경제적 충격으로 화폐 가치가 추락하면서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이 나라 화폐인 레바논파운드화는 1년 사이 90% 이상 평가 절하돼 휴지 조각에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암시장에서 1달러당 2만레바논파운드 이상에서 거래될 정도다. 이에 따라 석유 등 에너지 원료, 의약품 등의 수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발전소 가동이 자주 중단되고 약국들이 문을 닫고 있다. 수입에 의존하는 생리대와 탐폰 가격이 1년 사이 적어도 5배 이상 오르자 레바논 여성들은 걸레·신문지·비닐봉지 등을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레바논이 폭발 사고 이후 총체적 난국에 빠진 이유는 종교 간 다툼과 그에 따른 정치 세력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사 책임을 지고 하산 디아브 총리가 사임한 이후 3명이 총리 후보로 지명됐지만 아무도 의회 비준을 받지 못해 1년째 후속 정부 구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레바논이 이슬람 양대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가 섞여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동의 토착화된 기독교인 마론파까지 모두 18개 종파로 나뉘어 있는 ‘모자이크 국가’이기 때문이다.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레바논 헌법에는 종교 간 권력 배분 원칙이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나눠 맡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원칙은 폭발 사고 이후 난국을 헤쳐 나기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기는커녕 정파 간 다툼을 격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발 사고 원인 규명이 지지부진한 것도 국민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당시 폭발 사고는 부두의 대형 창고에 6년째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에 용접공의 불꽃이 옮겨 붙으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1년이 되도록 왜 대량의 질산암모늄을 장기간 부두에서 보관하고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고위 관리 중에서는 사고와 관련해 처벌을 받은 이가 한 명도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일 학교 교육과 식량 수입에 사용하라며 레바논에 1억유로(약 135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하며 레바논 정치권을 비판했다. 레바논은 1920년부터 23년간 프랑스 식민지였으며, 이후에도 프랑스에 의존해오고 있다. 마크롱은 “레바논이 빨리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며 “프랑스는 언제든 레바논을 도울 준비가 돼 있지만 무작정 백지 수표를 내밀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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