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력 키우는 중국, 발사 결정시점도 앞당길듯”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21. 8. 7.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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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본토 핵 떨어지면 반격서 적국 발사 감지되면 공격할 것”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된 ‘둥펑-41’ 대륙간탄도미사일./중국 CCTV 캡처

중국이 핵전력을 확충하면서 60년 가까이 유지해온 ‘최소 억지 전략’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현지시각)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은 핵무기 사용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선제 불사용 원칙’에 따라 중국 본토에 핵 미사일이 떨어진 경우에만 핵으로 반격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냉전 시기 미국과 러시아처럼 적국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된 것으로 확인된 시점에 핵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LOW(launch on warning) 전략’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아직 공개적으로 핵전략을 수정하진 않았지만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본격적인 핵 경쟁에 나설 경우, 북한 비핵화에 악재(惡材)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일본 등에서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중국의 핵 위협론은 최근 미국 싱크탱크와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과학자연맹(FAS) 소속 전문가들을 인용해 중국이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하미(哈密)의 800㎢ 땅에 110여 개의 핵미사일 격납고를 건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6월에는 워싱턴포스트가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소를 인용해 중국이 간쑤성 위먼(玉門) 사막 지대에 120개 핵미사일 격납고를 짓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전례 없는 대규모 확장”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위먼 시설은 풍력발전소”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중국 정부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격납고 추정 위성 사진 - 지난달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하미시(市) 인근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격납고로 추정되는 건물들이 건설되는 장면을 촬영한 위성사진. 완공된 건물(왼쪽)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돔 형태의 덮개가 씌워져 있다. /플래닛

중국은 1964년 핵무기 보유국이 됐지만 미국과 구소련(현 러시아)과 경쟁하기에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한참 뒤떨어졌고, 이 때문에 소극적인 전략인 선제 불사용 원칙을 유지해왔다. 미국과 핵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2005년 10월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을 핵 탄도미사일을 관할하는 전략미사일 부대에 초청하기도 했다. 선제 불사용론은 2006년 중국이 발표한 국방백서에서 처음 명시됐고 2019년 나온 ‘신시대 중국 국방’ 백서는 이 원칙을 재확인하며 “중국은 어떤 국가와도 핵 군비 경쟁을 하지 않을 것이며 핵 역량을 국가 안전상 필요한 최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 들어 중국에서는 핵전략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인은 지난 5월 “중국은 단시간 내 핵탄두를 1000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톡홀름 국제 평화연구소는 중국이 35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군 관보인 해방군보는 지난달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의 핵무기 현대화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탄두 소형화, 적의 미사일 방어망(MD)을 회피할 수 있는 기술 등 신형 무기의 등장으로 미래 핵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냉전 시대의 상호 확증 파괴 같은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글로벌 전략 안정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격납고 건설 추정 지역

FT는 중국이 핵전력을 강화하는 배경에 대해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과거 소련처럼 중국도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해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겠다는 계산과 함께,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미사일 방어 체계를 갖추면서 기존의 소극적 핵전략으로는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네기·칭화 글로벌 정책연구소의 자오퉁 연구원은 이 신문에 “최근 몇년간 기술적 차원에서 중국 핵전략의 현대화가 추진됐지만 갈수록 (미·중 경쟁과 같은) 지정학적인 목적이 핵무기 확대의 동기가 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핵 군비 증강을 계속함에 따라 미국도 자국 핵무기의 현대화와 첨단무기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핵무기 개발의 후발 주자인 중국이 오랫동안 적은 숫자의 핵무기로 ‘최소 억지’만 추구하는 전략을 쓴 반면, 핵무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미국은 핵 사용에 어떤 제한을 둔 적은 없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 보유량이 대등해지고 양측이 모두 상대의 핵미사일 발사를 감지할 능력을 갖춰 ‘상호 확증 파괴’가 분명해진 뒤 불필요한 군비 경쟁을 억제할 수 있는 군축 협상에 나섰다. 2009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핵무기 없는 세상’을 내세우며 선제 사용 금지를 검토하기도 했지만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정권 출범 후에는 미 국방부가 ‘핵 선제 사용 금지 정책의 위험성’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의 핵전력 확대 움직임이 뚜렷해진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신전략무기감축협정’ 등 미·러 간의 핵 군축 협상에 중국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워싱턴포스트가 중국의 탄도미사일 격납고 증설을 보도한 지난달에도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군비) 증강은 우려스럽고 중국의 의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며 “중국이 긴장을 조성할 수 있는 군비 경쟁의 위험을 낮추는 실용적 방안에 대해 우리와 대화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이런 요구를 무시하며 핵 군축에 참여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MD를 무력화할 수 있는 극초음속 무기 등 신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군비 경쟁의 가속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핵전력을 총괄하는 찰스 리처드 미 전략사령관은 지난 4월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현대화가 미국보다 빠르다”며 더 많은 투자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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