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不妊 정당’ 표현은 이제 그만

노석조 기자 2021. 8. 7.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지난 5일 라디오에 출연,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야당 대선 주자로 나선 데 대해 “국민의힘이 ‘불임 정당’임을 자백한 꼴”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이 당 밖 인사들을 데려와 정권 교체를 위한 ‘빅텐트’를 치는 상황을 비난하고자 ‘임신 못 하는 정당’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엄연히 국민의힘에 여러 대선 주자들이 있으니 사실관계도 틀렸고, 무엇보다 실제 불임으로 마음고생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해선 안 될 말이었다. 상처를 더 아리게 할 수 있고, 자칫 불임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모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알면서 저지른 실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송 대표는 잘못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라디오 진행자도 “네” “그렇군요”라고 했을 뿐 “부적절한 표현이다” “사과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하지 못했다. ‘불임’을 부정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데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뜻이다. 방송을 듣다가 금융권에서 일했던 아내가 들려준 직장 동료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임신을 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어렵게 임신하고도 유산하는 이들의 눈물 어린 사연이 부지기수다. 동료 기자들 몇몇이 “사실 우리 부부도…”라고 속내를 털어놓은 적도 있다. 평소 내색을 안 할 뿐 많은 이들이 난임, 불임, 유산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송 대표도 뒤늦게 문제를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정의당·국민의힘 등이 “장애나 질병을 부정적인 비유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인데 공당 대표가 이럴 수 있는가”라며 비판 논평을 내놓자, 그제야 한 언론에 “유감이다. 주의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을 밝혔다.

송 대표뿐 아니라 정치인들이 ‘불임 정당’ 표현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써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국민의힘 김수민 전 의원은 2018년 바른미래당 초선일 때 “우리 당이 젊은 정치인을 키워내지 못하는 ‘불임 정당’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경선준비기획단장일 때 당내 후보 중요성을 강조하며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 모델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당시 민주당은 불임 정당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일 당시 공개 연설에서 “당이 존립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 당은 풀뿌리 대중 기반이 없는 ‘불임 정당’”이라고 했다. 여야(與野)와 남녀 가릴 것 없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써왔던 것이다.

사실 정치권에선 ‘불임 정당’ 외에도 여성을 비하하거나 신체적 특징에 빗댄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부적절한 표현이 많이 쓰인다. 송 대표 발언 파문은 누구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다. 이번 사례가 정치판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퇴출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