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12] 당신은 당신의 나이가 아니다
지하철을 탔다가 시를 읽는 사람을 보았다. 책장을 넘기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지금 문장 속을 헤엄치고 있구나 하는 상상을 했다. ‘에릭 핸슨’의 시 ‘아닌 것’에는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말이 아프게 박힌 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지만 책을 쓰는 사람은 많아진 역설의 한가운데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인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꽃을 보거나 구름, 달을 볼 때 감탄사를 내뱉는 경우가 많다. 나 들으라고 일부러 하는 말이다. 상상력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종종 그것을 ‘마음의 근육’으로 비유하는데,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근육이 빠지는 것처럼 상상력도 빈곤해진다. 불편하더라도 일단 길들여지면 익숙함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인간의 편향성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은 그러므로 계속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내 아이의 어린 시절 내가 정성 들여 해주었던 걸 지금의 내게도 해주어야 한다. 책을 사주고, 전시회와 음악회에 데려가고, 낯선 나라에서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다. 여행할 때 굳이 최단거리가 아닌 안 가본 길로 가는 친구가 있다. 그에게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여행길 자체다. 디자이너인 그는 낯선 길, 헤맨 길, 되돌아간 길이 상상력의 친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가성비 관점에서는 ‘무용’의 세계지만, 상상력 관점에서는 ‘유용’한 일이다.
만약 나를 내 이름이나 나이, 몸무게, 키, 피부 색깔이 아니라 내가 키우는 식물이나 방에 걸린 그림, 지금까지 읽은 책, 사람들을 위해 흘린 눈물로 정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내가 믿는 것들이며, 내가 사랑하는 것이고, 내가 꿈꾸는 것들의 총합이다. ‘아닌 것’으로 나를 정의하지 말자는 시인의 상상력은 힘이 세다. 상상력은 공중에 떠다니는 허황된 생각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벼락처럼 깨닫게 하는 우주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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