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바다의 인문학

- 2021. 8. 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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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바다, 숭고하고 장엄
카뮈는 지중해가 기른 인간

지구 표면의 4분의 3은 바다가 차지한다. 육지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에게 바다는 낯설고 위험이 도사린 모험의 대상이었다. 인류는 기하학, 점성술, 점술과 더불어 바다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항해에 나섰는데, “별, 바람, 구름, 해류, 물고기 떼와 새들의 비행에 대한 깊은 지식 없이는 항해도 불가능했다.”(자크 아탈리) 인류는 바다를 가로질러 교역과 이동을 늘리면서 문명의 번성에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다는 폭풍, 난파, 해적질, 전쟁이 거품처럼 일어나고 사라지는 장소였다.

세계는 크게 바다와 육지로 나뉜다. 바다는 유동하고 다양한 변화를 품고 있다. 바다와 견준다면 육지는 부동하고 변화가 적다. 내륙의 시간은 평평한 들과 높이 솟은 산의 시간은 침묵으로 굳어진 시간이다. 그만큼 변화가 완만하고 느리게 흘러간다. 바다의 시간은 늘 출렁이며 시시각각으로 유동한다. 바닷가에서 산 사람은 바다의 변화무쌍함과 무한함과 원거리 속의 통일을 내면화할 기회를 얻는다. 반면 내륙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육지의 밋밋한 항구성, 유한성, 근경이 품은 다양함을 제 내면 기질로 키울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석주 시인
철학자 헤겔은 “육지, 특히 산간의 평지는 인간을 바닥에 붙들어 맨다. 이로서 인간은 무한히 많은 의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라고 쓴다. 판에 박힌 생업에 붙들린 ‘내륙의 인간’은 그렇게 길러진다. 바다와 맞닿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바다라는 비규정성의 요소는 우리에게 무제한적인 것, 무한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간은 이 무한함 속에서 자신이 살아간다고 느끼기 때문에 바다를 보며 제한적인 것을 넘어서고 싶다는 용기를 품는다.” 나는 들과 야산, 밭이랑과 논둑, 내와 언덕이 전부인 내륙에서 나고 자란 탓에 바다를 본 적이 없고, 바다의 기억도 없다. 나는 내륙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만을 먹고 자랐다. 내 감수성과 세계 인식은 전적으로 땅이 품고 길러낸 산물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지중해가 기른 인간이다. 노동자의 아들로 알제리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카뮈는 ‘가장 가까운 바다’라는 산문에서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 후 바다를 잃어버리게 되자 모든 사치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썼다. 나는 남루한 가난마저 호사로 느끼게 한다는 문장을 도무지 쓸 수가 없다. 바다의 결핍은 온통 잿빛인 내 내륙 정서에 치명적인 부재의 흔적으로서만 또렷할 뿐이다. 나는 “바다에서의 아침은 세상의 처음을 보는 것 같다”라고 쓰는 그를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대륙에서 뻗어 나온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이다. 그 바다와 맞닿은 내륙은 만(灣)과 들쭉날쭉한 해안과 개펄을 품는다. 지정학적으로 보자면 한국은 해양국가에 속한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대륙 세력이 한반도 위쪽에 있고, 일본과 미국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를 마주 보고 있다. 고대 이래로 한반도인은 제해권을 거머쥐고 교역과 항해를 위해 먼바다로 나가는 일에 몸을 사렸다. 한반도인의 삶은 내륙에 귀속된 채로 농경을 주로 하며 사는 것에 만족했으니 한반도인을 해양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나는 농경민족의 유습을 유전자에 새기고 태어났다. 날것의 생선이나 해산물을 시식한 경험이 없던 내가 처음 바다와 마주한 것은 열일곱 살 때다. 망막을 직격하는 망망대해는 광활함, 통일성, 동일 형식으로 나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내륙의 사람에게 바다는 적지 않은 정서적 파장과 동요를 일으켰다. 시선을 끝 간 데 없이 빨아들이는 푸른빛과 그 공간의 무한함에 아찔했다. 그것은 바다의 광활함과 먼 것을 품은 가까움을 겪은 데서 오는 충격이었을 테다. 처음 본 바다는 얼마나 숭고하고 장엄했던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다, 저 광활한 바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저 혼자 끓어오르는 바다, ‘체리 열매처럼 붉은 석양’ 아래 백사장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의 바다, 나 혼자 울게 놔두던 바다, 나와 웃던 바다…. 바다는 인간이 가 닿을 수 없는 숭고의 느낌을 불러낸다. 여름이 오면 나는 늘 푸른 통영의 바다를 그리워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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