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주름장식블라우스 증후군
거친 여성 꼬리표 붙을까 몸사려
페미니즘 이상, 남녀 존중이건만
남녀 갈등의 원인 낙인 안타까워
열리느냐 마느냐 그토록 망설이며 화제가 됐던 도쿄올림픽이 마침내 치러졌고, 내일이면 끝난다. 화제가 됐던 사건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여성선수의 머리카락에 쏠린 관심이었다. 하나는 유도의 강유정 선수가 체급 조건에 맞추기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 머리카락을 아낌없이 밀어버렸던 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양궁에서 금메달을 받은 안산의 짧은 머리스타일에 대한 몇몇 발언이었다.
바람 부는 야외에서 하루 종일 달리는 말을 스케치하다 보면 보뇌르의 긴 곱슬머리는 해결할 수 없이 엉켜버렸고, 잠들기 전에 빗질조차 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치렁치렁 부풀린 긴 치마는 말을 쫓아다니기에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다. 보뇌르는 짧게 머리를 자르고, 작업을 하는 동안은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경찰국장에게 요청했고, 어렵사리 허가증을 받았다.
그런데, 성공한 여성화가가 된 후 주위의 눈치를 봤는지, 보뇌르는 전문가적 삶을 위해 자신이 내렸던 단호한 결정과 행동에 대해 틈틈이 해명하곤 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어릴 때부터 내 머리를 땋아줄 사람이 없었어요”라든가 “내가 바지를 입는 것은 주위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게 남성복은 그저 작업복일 뿐이니까요. 바지라면 바닥에 끌리는 치마로는 할 수 없던 일들을 과감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보뇌르는 다른 여성화가가 바지 작업복을 입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말을 흐렸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70년에 발표한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을까?’라는 논고에서 보뇌르의 변명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노클린은 여성이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삶을 스스로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여기는 증상을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주름장식블라우스 증후군’으로 분류했다. 보뇌르가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듯 구차하게 합리화하려 한 것은 그 증후군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증후군의 여성은 사실상 자신은 전통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정과 시간을 100% 쏟아부으면서도, 그런 태도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기존 사회에 썩 위협적인 여성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더 여성스러워 보이는 옷을 입고, 헌신적인 엄마의 이미지를 과시하고, 뜨개질 솜씨나 요리 실력을 증명하려 든다는 것이다.
21세기가 왔어도 여성에게 주름장식블라우스 증후군을 야기시키는 분위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여성들은 경쟁사회 속에서 자기 성취를 향해 투혼하면서도 행여 거친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봐 지극히 몸을 사린다. 그 꼬리표가 혹시 ‘페미니스트’는 아닌지.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부여된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도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권리를 갖자는 게 기본목표다. 물론 개중에는 남성을 반목질시하며 여성이 더 우월한 존재임을 주장하기 위해 분쟁을 일삼는 부류도 있다. 그런 극단적인 사람들을 페미나치라고도 부르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그게 곧 페미니스트로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페미니즘의 이상은 남녀의 상호존중과 포용이건만, 어쩌다 남녀갈등의 원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는지, 어디서부터 오해가 발생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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