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메타버스'로 열린 정부 행사.."안 보여요, 안 들려요" 아우성

이기범 기자 2021. 8. 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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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로 열린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 상생협약식
접속자 200명 넘자 발표 끊겨..구석에서 '스도쿠'하는 사람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6일 메타버스 방식으로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 상생협약식을 열었다. 사진은 문용식 NIA 원장이 발표하는 모습. (개더타운 화면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발표 중인가요? 들리지 않네요…" "발표자를 제외하고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꺼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자 발표장은 혼란에 빠졌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열린 정부의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 상생협약식 얘기다.

발표자의 모습이 암전되고, 침묵이 흐르자 채팅창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발표가 끊긴 사람들과 접속 장애 유발자를 단속하는 사람, 카메라를 끄지 않아 본인의 컵라면 먹방을 생중계하는 사람, 발표를 안 듣고 구석에서 '딴짓' 하는 사람이 한데 모여 메타버스 발표장은 현실보다 다채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실제처럼 구현된 메타버스 발표장…2D 캐릭터 움직여 방명록 작성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6일 오후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 상생협약식을 열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의 핵심인 '데이터 댐'을 채울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AI 눈알 붙이기' 작업으로도 불리는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경력 단절 여성, 취업준비생 등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춰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사업 참여 기업·기관들의 상생협약이 진행됐다. 또 기업들의 사례 발표와 수행기관 대상 데이터 품질 및 개인정보 교육이 이어졌다.

이날 행사는 메타버스 플랫폼 '개더타운'(Gather Town)에서 진행됐다. 개더타운은 2D 아바타 캐릭터를 통해 사무실이나 세미나, 발표장으로 꾸며진 가상 공간에서 화상 회의나 발표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업무용 메타버스 솔루션이다. 마치 게임처럼 키보드 방향키를 눌러 캐릭터를 이동시킬 수 있다. 이용자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활성화해놓으면 다른 캐릭터와 마주쳤을 때 영상 대화 기능이 자동으로 실행돼 실시간 소통을 할 수 있다.

행사장은 실제 현실의 행사장을 2D 도트 그래픽으로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행사장에 들어가자 방명록을 작성하고 자리에 착석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2D 도트 그래픽으로 꾸려진 게시판에 다가가자 방명록 기능이 활성화됐다. 행사 일정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발표자들은 연단 근처 지정석에 앉았다. 기자는 그 뒤에 마련된 기자석에 착석했다. 이어서 일반 참석자들이 6열횡대로 헤쳐 모였다.

메타버스 방식으로 진행된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개더타운 화면 갈무리) © 뉴스1

◇"안 보여요", "안 들려요" 소리없는 아우성 이어져

"제 목소리 잘 들리시나요?"

발표자를 대리한 2D 캐릭터가 연단에 올라서자 발표자 화면이 참석자들에게 공유됐다. 문용식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 원장과 조경식 과기정통부 제2차관이라고 표기된 캐릭터가 차례로 연단에 올라 개회사와 격려사를 진행했다.

문용식 원장은 "NIA에서는 국내나 글로벌 회의를 할 때 개더타운 프로그램을 종종 이용했는데 오늘 입장객이 200명을 넘었고, 300명 가까이 될 것 같은데 행사가 원활하게 진행될지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며 "(메타버스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있을 텐데 원활하게 회의가 진행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행사장에 200명 이상의 접속자가 몰리면서 발표 화면이 암전된 모습. (개더타운 화면 갈무리) © 뉴스1

하지만 문 원장의 바람이 무색하게 조경식 차관의 격려사에 앞서 끊김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 차관이 연단에 올랐을 때 행사 참석 인원은 215명을 넘어섰다. 조 차관이 나와야 할 화면에는 "Sharing A/V with too many people(너무 많은 인원이 영상을 공유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발표가 끊기자 채팅창에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어졌다. (개더타운 화면 갈무리) © 뉴스1

◇컵라면 먹방부터 스도쿠 딴짓까지…다채로운 행사의 면면

이 같은 현상은 행사 내내 반복됐다. 일부는 정상적으로 발표 화면이 송출됐지만, "안 들리고 안 보인다"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채팅창에 빗발쳤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린 탓도 있지만, 카메라와 마이크를 꺼달라는 안내에 따르지 않는 참여자들이 생기면서 '끊김 현상'(렉)을 유발했다. 실제 몇몇 캐릭터 근처에 다가가자 참가자의 컵라면 먹방 영상이 여과 없이 송출됐다.

또 일부는 발표를 듣지 않고 구석에서 메타버스 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개더타운'은 '마인크래프트' 류의 게임처럼 '빌드' 기능을 갖췄는데 사물을 멋대로 만들어 놓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메타버스 행사장 구석에서 몰래 '스도쿠'를 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더타운 화면 갈무리) © 뉴스1

행사 운영진들은 연신 "회장 내에 사물 빌드는 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본인이 만든 사물은 되도록 지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를 외쳤다. 그러나 구석에서 분수를 세우고, 스도쿠 게임을 하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스도쿠 모양 2D 물체에 다가가 상호작용 버튼 'X'를 누르자 실제 스도쿠 게임이 실행됐다.

◇현실과 같은 상호작용으로 메타버스의 가능성도 보여줘

이러한 와중에 상생협약 체결식이 진행됐다. 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협약식 진행 공간에 관계자들이 모여 협약서에 실시간 서명을 진행했다.

이어서 크라우드소싱 기업들의 사례 발표와 수행기관 대상 데이터 품질·개인정보·회계·청렴 교육이 진행됐다. 메타버스 세상에서 발표는 끊임없이 끊겼지만, 다행히 대안이 마련돼 있었다. 유튜브, 네이버TV, 카카오TV 등을 통해 발표 내용이 동시에 전달됐다. 오후 2시30분에 시작된 행사는 우여곡절 끝에 오후 6시쯤 끝났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협약 체결식이 진행되는 모습. 관계자들이 협약 공간에 모여 실시간으로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개더타운 화면 갈무리) © 뉴스1
실시간으로 협약서 서명이 이뤄지는 모습. (개더타운 화면 갈무리) © 뉴스1

이날 행사는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엿보여줬다. 단순 발표 화면 공유가 아닌 아바타 캐릭터를 가상 공간에서 직접 움직이는 방식이어서 비대면으로도 실제처럼 상호작용을 하는 것 같은 감각이 전달됐다. 화상회의 플랫폼에서는 소거된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실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한 참관객은 "오프라인 행사에 비해 매끄럽지는 않지만 코로나 시대에 적절한 가상 공간에서 재밌는 방법으로 행사가 진행돼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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