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질박함·몽골의 야생·中강남의 화려함..동북아 문화 한자리에
몽골 정복한 만주족 핵심 군사훈련 지역
황실 별궁으로 자금성 8배..1792년 완공
단아한 목조건물부터 인공호수·초원 등
다민족 국가 청나라 모습 곳곳에 어우러져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동북쪽 약 200㎞ 거리에 청더(承德·승덕)라는 곳이 있다. 청나라 만주인 ‘한’들의 별궁인 피서산장(避暑山莊)이 있는 곳이다. 엄밀히 말하면 평범한 시골에 피서산장이 세워지면서 청더라는 도시가 탄생했다. 청더는 지금이야 여느 중국 도시처럼 됐지만 원래는 몽골 지역이었다. 중국과 몽골·만주의 교차로에 놓인 이 지역을 찾아낸 만주인들의 안목도 놀랍다.
유래는 이렇다. 한족의 명나라를 멸망시킨 만주족 청나라는 기세를 몰아 몽골까지 정복한다. 명나라 때까지 몽골과 중국의 경계선이었던 만리장성은 효용 가치를 잃었다. 만주족은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했는데 핵심 훈련지로 청더 지역이 안성맞춤이었다. 또 일단 정복했지만 반항할 가능성이 있는 몽골도 제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고토인 만주도 가까웠다.
이러한 사정으로 만리장성 북쪽의 몽골 지역에 부수도 역할을 하는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청더이고 별궁이 피서산장이다. 이런 정치적 속셈을 겉으로는 부드럽게 나타내면서 ‘더위를 피한다’는 이름을 붙였다.
피서산장은 중국 전체 역사에서도 최고의 황제로 평가 받는 강희제 때인 1703년 처음 건설을 시작했다.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마무리된 것은 손자인 건륭제 때인 1792년이다. 총넓이는 564만㎡로 베이징 자금성의 8배다. 대략 궁전구와 호수구·평원구·산악구로 나뉜다. 전체적으로 만주인 본래의 질박함과 중국 강남의 화려함, 몽골의 야생미가 조화롭다. 동북아시아의 세 문화가 한자리에서 만난 셈이다.
피서산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궁전구의 입구인 ‘여정문(麗正門)’으로 입장하게 된다. 문 위에 있는 편액을 보면 언어만 다섯 가지다. 오른쪽부터 만주어·티베트어·한어·위구르어·몽골어다. 청나라가 5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라는 취지다.
만주제국인 청나라 임금의 호칭은 민족별로 다르게 사용됐다. 만주인 자신들은 본래 한(Han·汗)이라고 불렀다. 중국인에게는 황제였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중국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황제’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듣는다. 반면 티베트인은 차크라바르틴(전륜법왕), 몽골인에게는 칸(Khan·可汗)이었다. 위구르인에게는 이슬람의 보호자로 불렸다.
여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궁전구는 만주 왕조 초기의 수수함이 돋보인다. 규모는 10만㎡ 정도다. 궁전구의 핵심은 담박경성전과 사지서옥·연파치상전·운산승지루 등 네 곳이다. 담박경성전은 의전을 하는 정전으로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전에 해당한다. 녹나무로 지은 단층 건물이 단단하다.
바로 뒤쪽 사지서옥은 한이 일상 업무를 보던 편전이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조선의 사신단과 박지원이 여기서 건륭제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어 나오는 연파치상전은 잠을 자는 침전, 맨 뒤에 있는 운산승지루는 도서관이다.
연파치상전의 동서로 작은 건물이 붙어 있는데 그중에 서쪽 건물을 ‘서소(西所)’라고 부른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가 생활했던 곳이다. 서태후가 유명하다 보니 피서산장에서 유일하게 개인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운산승지루를 나서면 호수구가 있다. 호수구는 쑤저우 등 화려한 중국 강남 원림의 축소판이다. 크고 작은 8개의 인공 호수를 파고 강남의 명승지를 본뜬 건물들을 주변에 배치했다. 피서산장의 상징이자 홍보용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호수구의 동남쪽에 위치한 수심사다. ‘수중의 정자’라는 뜻으로, 양쪽에 목재 패방이 하나씩 있고 중간에 정자가 세 개다. 수심사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호수와 산들도 절경이다.
호수구 북쪽으로는 평원구다. 야생 그대로의 숲과 초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군사 훈련 및 기마 경기에 사용됐다고 한다. 원래는 몽골식 천막 게르가 설치돼 있었고 한이 몽골 귀족들과 회합했던 곳이다. 현재는 콘크리트 게르를 지어서 다소 멋이 떨어진다. 이들은 상점이나 공연장 용도로 사용된다. 그 외에 산악구가 있는데 만주 지역의 명산들을 모방해서 꾸몄다고 한다.
피서산장에서 보면 전통 시대와 현대의 중국 민족 문제가 다른 각도로 다가온다. 현 중화인민공화국은 위의 5대 민족을 포함한 56개 민족을 통칭해 중화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실질적으로 한족의 국가이고 권력도 한족이 장악하고 있다. 반면 명실상부하게 제국이었던 청나라는 각 민족을 만주인 한이 개별적으로 지배한다는 개념을 유지했다. 정복된 티베트나 몽골·위구르 등의 부족은 직접 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는 나중에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만주 제국이 무너지자 이 민족들이 복종 의무가 없어졌다며 ‘독립’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반면 청나라를 계승했다는 한족의 중화민국은 이들 모두를 중국인으로 간주했다. 이는 현재까지 위구르·티베트·몽골 등의 민족 문제가 논란거리인 이유다.
베이징=최수문 특파원 chs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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