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언론봉쇄법, 文정권의 최악 자충수

기자 2021. 8. 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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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권 정치부장

前정권 탄핵해 집권한 文정권

혁명적 개혁 강박관념 속 4년

‘뭐든지 해야 한다’ 위험한 생각

가짜뉴스 몰아 권력 비판 봉쇄

‘언자완박’ 언론법 밀어붙여도

의도와 달리 정권교체 부를 것

느닷없는 일은 없다. 대형 재난이든, 정치 격변이든 전조가 있다. 대형 재난 1건이 나기 전에 29건의 소형 사고가 있고, 그 이전에 300건의 징후가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정치에서도 통한다. 재난은 무시해서 당하지만, 정치는 알면서도 당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분노한 부동산 민심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부는 26번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할 정도로 위험 징후를 포착하고 대응까지 했다. 그러나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처방이 아니라, ‘집 부자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이념에 사로잡혀 잘못된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집권한 현 정권은 혁명적 개혁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4년 3개월을 보냈다. 정책 실패가 되풀이되는 이유다.

권력이 오만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에, 강박관념에 빠지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둘 다 위험하다.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1996년 12월 26일 새벽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소속 의원을 단체로 버스에 태워 여의도 국회로 몰래 들어가 본회의를 소집했다.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한국당 총재를 겸하며 제왕적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날치기 역풍은 매서웠고,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정권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넘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신정아 게이트’가 터졌다. 신 씨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불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먹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탄핵당했지만 이미 1년 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때부터 탄핵 불씨가 타올랐다.

대통령 선거를 7개월여 남겨 놓고 민주당이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를 막겠다며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천명했다. 언론·기자단체뿐 아니라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권력자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대응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반대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전례가 없다”(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중 처벌 소지가 있고, 언론 기능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국회 수석전문위원) 등 전문가의 경고도 소용이 없다. 되레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5배는 약하다.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내면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이재명 경기지사) “현직 기자였으면 환영했을 것”(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이라며 독려한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밝힌 바 있듯이 박연차 회장이 준비한 명품 시계가 노건평 씨를 통해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된 것은 사실이다.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이 모호해 정부와 기업 등이 정상적인 기사마저 ‘허위 기사’라고 낙인 찍어 고발할 수 있는 데다 허위 기사가 아니라는 입증을 언론사가 하게 돼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논두렁 시계’ 기사는 가짜뉴스가 돼 최대 5배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 ‘명품 시계’도 안 받은 것으로 될 수 있다. 강병원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불량 식품’ 관련 언론 인터뷰 발언을 언급하며 “언론이 유력 대선 후보 발언을 지면에서 은폐하는 건 국민의 선택권을 저해하는 것”이라며 “언론이 주요 발언을 선택하는 게 가짜뉴스이며 오보”라고 말했다. 언론의 편집권과 자율권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언론 보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짜뉴스로 오보로 고발하겠다는 경고다.

문 대통령 퇴임과 대선을 앞두고 ‘언론봉쇄법’ 처리를 서두르는 여권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사실상 방송통신심의위원장으로 내정됐고, 공정한 선거 관리를 책임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해주 상임위원의 사직 논란이 이는 등 대선 공정성 의구심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 박탈)’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강행 처리할 경우 노동법 날치기와 비교되는 한국 정치·언론사의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내년 정권 교체를 자초하는 최악의 자충수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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