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문화재 보호와 파괴

김영나 기자 2021. 8. 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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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중동 등 곳곳에서 전쟁 치르며

역사적 유물·미술품 파괴 자행

테러집단 IS, 인류 유적 훼손

재원 조달한다고 만행 저질러

문화재 보존 인식 확산됐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 비극 일어나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미국미술 삼백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품은 필라델피아 미술관, LA카운티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에서 온 회화·조각·공예 작품 약 170점이었다. 2월에 시작한 이 전시는 그 후 대전시립미술관으로 옮겨 9월 1일까지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2월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면서 국제사회를 긴장시켰고, 5월에는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늘 이런 경험에 익숙한 서울 시민들은 평온한 일상을 보냈지만, 미국 미술관 측에서는 당연히 걱정했고,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결국, 아무 일 없이 ‘미국미술 삼백년전’은 잘 끝났고 작품들은 무사히 돌아갔다. 그러나 국제 교류가 빈번해진 오늘날 각 나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비상사태 대비책을 마련하고 상대국의 미술품도 충분한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 곳은 쿠웨이트였다. 1990년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범해 쿠웨이트 왕실 컬렉션을 약탈했다. 다행히 쿠웨이트 박물관에는 사진이 부착된 유물 카드가 상세히 정리돼 있어 후일 대부분을 유엔의 중재로 돌려받았지만 일부 보석류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이듬해인 1991년 걸프전쟁 때는 반대로 이라크의 유물들이 미군의 폭격을 받았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수메르의 도시인 우르에 있는 지구라트에 많은 구멍이 생겼다고 보고했다. 그 후,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는 군사작전 때 고고학자들에게 자문해 역사적 유적이나 종교 사원, 조형물이 있는 곳을 피해서 작전할 것을 지시했다.

오늘날 문화재 파괴는 끊이지 않고 오히려 더 폭력적이 됐다. 문화유적의 약탈은 탈레반이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또는 ISIS) 같은 테러 집단의 목표가 됐고, 이들의 역사적 유적과 미술품 파괴는 국제사회의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가장 먼저 엄청난 피해를 본 곳은 1978년 공산혁명과 1979년 소련의 침공을 겪은 아프가니스탄이다. 1989년 마침내 소련군은 철수했지만,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이 이어졌고, 그 후 탈레반이 등장해 카불을 점령(1996년)하면서 더 많은 훼손이 있었다. 197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국립박물관(카불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문화유산의 70%가 1990년 중반에 사라졌다. 수장고의 문이 깨졌으며 약 7만 점의 유물이 도난당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 숫자는 확실하지 않다.

또 다른 비극은 2001년에 벌어졌다.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 뮬라 무하마드 오마르는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상(像)과 비(非)이슬람 종교물을 파괴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박물관에 탈레반 고위 관료를 포함한 10여 명이 들이닥쳐 유물 진열장을 망치로 깨뜨리고 조각상들을 파괴하고 말았다. 이교도 문화의 흔적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이들은 계속해서 2500여 점의 문화유산을 파괴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2001년 3월, 바미얀에 있는 2∼3세기 및 4∼5세기에 제작된, 각각 36m, 55m 높이의 대불상 2점을 폭파한 것이다.

가장 염려스러운 집단은, 현재 분해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IS다. 2010년 이들은 팔미라의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기를 거부한 82세의 고고학자를 참수하고 시신을 유적지 기둥에 매달았으며 그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어서 고대부터 동서 교역의 교차로였던 시리아 팔미라의 바알샤민 사원(17년 건립)을 비롯, 여러 유적을 폭파해 버렸고, 이 장면이 전 세계에 뉴스로 방영됐다. 모스크, 교회, 대학, 지식 및 문화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관은 이들의 만행을 피하지 못했다. IS의 역사적 유적지 파괴는 감정적인 선동의 하나로, 이러한 시각적 효과를 노려 IS 지원자들을 모으는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이 문화재를 약탈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재원 조달이다. 많은 파괴적 행위가 계획적이었고, 문화재 판매는 그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IS 조직 내 ‘귀중한 자원 섹션’이라는 부서의 임무는 유적지를 파헤쳐 도굴하고 반출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출된 문화재들은 거의 등록이 돼 있지 않아 추적이 어렵다. IS는 그들과 연관된 국제적인 골동품상이나 중간상들, 그리고 범죄 조직들을 통해 암시장에서 거래했는데, 대체로 작은 물건일수록 쉽게 운반할 수 있어 위험 부담이 작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구매자는 유물의 출처가 위조되고 조작되기 때문에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중간상들이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되자 테러 집단이 인터넷에서 직접 팔기도 한다.

물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전쟁이나 자연의 재난과 같은 긴급 상황에 관한 결의를 하고, 장·단기적 지원 활동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약탈된 문화재를 반환받거나 파괴된 문화재를 복구하기는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다. 전쟁을 일으켜 타국의 문화재를 파괴하거나 문화를 역사에서 지워 버리고 그들의 정체성을 없애 버리는 행위는 고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 보존에 대한 공동 인식과 국제적 공조가 확산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의적 훼손이 일어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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