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력해봤지만, 이해하기 힘든 정부의 '계란값 인하' 집착

세종=최효정 기자 2021. 8.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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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대에 정체된 달걀 가격이 조속히 6000원대로 인하될 수 있도록 특단의 각오도 대응해달라”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지난 3일 주문이 기획재정부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된 이후, 농축산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 이메일 등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홍 부총리 발언만 놓고 보면 산란계를 통해 달걀을 공급하는 양계업자들이 매점매석을 통해 내려가야 할 가격을 붙잡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의 한마디는 선량한 양계업자들을 매점매석꾼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계란만 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하소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계란 값이 지난 6,7월 두 달 연속 전년대비 50% 이상 폭등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 정책 탓이었다. 조류독감(AI) 유행을 막기 위한 방역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5월까지 6개월 간 1580만마리의 닭이 살처분된 후유증이 계란 공급 부족 사태를 낳았다. 살처분으로 산란계가 소실됐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데, 홍 부총리는 ‘특단의 각오로 달걀 가격을 인하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불합리한 주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민생경제장관회의에서 “계란 가격, 수급을 특별하게 살펴달라”고 한 이후 ‘달걀 값 하향 안정’은 범(汎) 정부적 과제가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급 이상 고위직들이 전국 산지를 돌며 공급 현황을 챙기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 담합 조사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정부는 계란 값 잡기 명분을 ‘민생안정’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계란 가격 하나 잡는다고 천정부지인 집값과 전월세,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침몰하는 영세자영업자들, 직업을 잃은 청년들의 삶이 ‘안정’을 찾을까?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CPI) 구조를 보면 정부의 노력에 수긍된다.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계소비지출이 많은 460개 품목을 대상으로 작성된다. 이중 소비 빈도수가 높은 품목은 가중치가 더 높다. 계란은 쌀이나 돼지고기 등과 함께 식품군에서는 가중치가 가장 높은 군에 속한다. 그 자체가 최종 소비재이자, 다른 가공식품을 만들기 위한 중간재 역할을 하는 계란은 체감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물가 가중치에 비해 훨씬 큰 품목이다.

정부의 계란 값 집착이 2% 중후반대로 올라간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의심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상대적으로 가중치가 큰 계란 가격을 잡아야 상승률 숫자를 낮출 수 있고, 물가 불안으로 악화된 민심을 달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는 것이다. 한 국책연구원 소속 경제학 박사는 “정책 실패 등으로 천정부지인 전월세 가격은 잡을 수 없으니 애먼 계란 가격이라도 내려보자는 태도”라고 혹평했다.

“지표 숫자만 잘나오면 된다”는 태도는 현 정부 정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추락한 고용률은 세금으로 만들어낸 노인 일자리로 메우고, 민간 소비 지표가 시원찮으면 지원금을 뿌려 소비를 하게 끔 만들자는 식이다. 코로나 대유행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소비·여행 쿠폰을 뿌려서 방역을 망친 희극 같은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에 ‘지표 숫자만 세탁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환자의 고통과 증상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분칠만 하는 ‘돌팔이’식 처방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시장을 맘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시장원리가 아닌 선악의 잣대로 사안을 바라보고, 수요·공급에 따라 조정되는 가격을 정부 의도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태도는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계란 한 판을 살 때도 취득세와 보유세를 내게 하라”는 비아냥이 왜 나오는지 새겨 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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