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밥그릇 싸움? '변협-로톡 갈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이미호 기자 2021. 8. 6.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미호

대한변호사협회가 5일 ‘로톡 변호사’ 징계를 위한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려면 대한변호사협회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변호사법 7조). 대부분 변호사들이 변협에 가입돼 있다는 뜻이다. 로톡 변호사 역시 변협에 적을 두고 있다. 날이 잔뜩 선 변협의 으름장에 앞에 ‘먹고 살려면’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다. 변협 역시 이걸 알고 있다고 짐작된다.

로톡은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분위기다. 로톡은 변호사 징계 시행 전날, 교대역 등 지하철 옥외광고에서 로고를 삭제했다. 기존에는 변호사 이름 옆에 로톡 로고가 함께 표시돼 있었다. 로톡은 “새로운 광고 규정으로 변호사 회원분들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하철 옥외광고를 모두 교체했다”고 했다. 변협이 “광고의 주체가 돼야 할 변호사를 소속 구성원인 양 광고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을 뿐, 로톡은 정작 법률플랫폼 업체 자신을 광고하고 있다”고 지적한데 대한 조치다. 과거 횡행했던 ‘사무장 로펌(사무장이 변호사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법무법인)’의 역할을 로톡이 대신하고 있다는게 변협의 논리다.

변협은 로톡 같은 법률플랫폼을 이대로 두면 국내 법률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변협은 “거대 자본이 장악한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따기 때문에 인권과 정의를 위해 싸울 수도 없고, 자본을 상대로 싸우면 결국 시장에서 퇴출돼 사멸할 것(성명서 발췌)”이라고 우려한다. 법률시장은 약자를 우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사회적 자본’의 성격이 있다. 철저한 수익논리로 돌아가는 플랫폼 사업자가 차지하는 영역이 커질 수록, 약자들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에 일견 공감한다.

그런데 국민들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변협은 “결국 법률시장의 질이 떨어지면 너희들이 손해야”라고 항변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겐 이 같은 우려는 시기상조로 들린다. “변호사들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아냥만 넘친다.

기자가 3년전 법조출입한다고 서초동에 처음 발을 들였을때가 생각난다. 공증·서증·녹취 생경한 용어들과 변호사들 이름을 내건 법률사무소 간판들을 보니 위압감이 느껴졌다. 시골에서 고속버스 타고 올라왔다는 아저씨가 날 붙잡고 물어보기도 했다. 어디로 가면 변호사를 만날 수 있냐고. 서비스의 질을 논하는게 시기상조라는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어쩌면 로톡이 이러한 법률소비자들의 니즈를 간파했기 때문에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법률소비자의 접근 문턱을 낮추고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일은 ‘사법정의’와 직결될 만큼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변협에 묻고 싶다. 과연 이러한 고민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는지, 법률플랫폼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러한 화두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심해 본 적이 있는지 말이다. 변협은 이제서야 ‘공공데이터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대중의 비판적 시선을 덜어보려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변협이 로톡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카드를 꺼낸 것은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급했다. 법무부와 국회 등에 조율을 요청해 얼마든지 공개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 주제를 꺼냈어도 됐다.

징계라는 액션이 ‘보여주기용’ ‘세력과시’로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변협은 최근 선거를 통해 로스쿨 출신의 젊은 변호사들을 주요 요직에 앉혔다. 정작 먹고 살 걱정없는 대형로펌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 로톡을 이용하는 변호사들 대부분이 작은 로펌의 젊은 변호사들이라는 점, 때론 자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민·형사상 법률상식이나 절차를 답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그런데 소비자들은 이것조차 물어볼 곳이 없다) 어찌보면 ‘약자들끼리의 싸움’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변협은 로톡 변호사 위법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지만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 시민단체와 함께 이 사건을 이슈화하고 법률플랫폼 사업자와 협력 및 조정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법률시장 뿐만 아니라 미용·의료정보 플랫폼인 ‘강남언니’, 세무회계 플랫폼 ‘자비스앤빌런즈’가 각각 의사협외와 세무협회 등 전문직역들과 비슷한 논리로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 ‘사(士)자’들과 플랫폼의 갈등문제가 본격 시작된 상황이다(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신산업의 전통시장 영역 침탈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본다. 무조건 막겠다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마지막으로 변협-로톡 갈등의 피해자는 결국 법률소비자인 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지 말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비판해야 한다. 이번 갈등의 실타래가 어떤 방식으로 풀리느냐에 따라, 우리가 변호사를 만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 일상생활 속 사소한 갈등이 언제 법적분쟁으로 비화할지 모르는 시대 아닌가.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