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일본 위스키 실종 사건

선우정 논설위원 2021. 8. 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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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보수진영의 연례 주요 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AP 연합뉴스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이 엉뚱한 일로 궁지에 몰렸다. 장관 때 일본 아베 정부가 미 국무부에 선물로 보낸 고급 위스키가 감쪽같이 사라져 조사받는다고 한다. 미 관료는 받은 선물이 390달러를 넘으면 정부에 그만큼 자기 돈을 내고 소유하든가, 아니면 국고로 넘겨야 한다. 문제의 위스키는 5800달러짜리다. 660만원이 넘는다. 위스키 이름은 기록엔 없다고 한다.

▶선물을 준 시기는 2019년 6월 오사카 G20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이다. 당시 미국에선 일본 위스키 붐이 일었다. 50년짜리 일본 희귀 위스키가 미 경매에서 100만달러에 낙찰된 때가 그즈음이다. 뉴욕 술집에선 ‘야마자키(山崎) 25년’ 더블샷(60㎖)을 500달러에 팔았다. 지금 총리인 스가 당시 관방장관도 NSC의 포틴저 선임보좌관에게 일본 위스키를 선물했다고 한다. 폼페이오보다 2574달러 비싼 8374달러짜리였다.

▶일본 위스키 역사는 100년이 되지 않는다. 다케쓰루 마사타카란 청년이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제조법을 익혀 처음 만들었다. 유명한 산토리와 닛카 위스키 모두 그가 시작한 것이다. 1962년 영국 외무장관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년필과 노트로 일본이 영국 위스키 비밀을 모두 훔쳐 갔다”고 칭찬한 것도 그를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세계시장에선 일본 위스키를 거들떠도 안 봤다.

일러스트=김도원

▶20년 전만 해도 ‘일본 위스키는 다 망한다’고 했다. 일본 소비자가 독한 술을 멀리해 매출이 20년 이상 내리막이었다. 할 수 없이 조금만 만들었다. 그런데 대박이 터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위스키 품평회를 석권하자 분위기가 변했다. 2015년 본고장 스카치 위스키를 누르고 영국 ‘위스키 바이블’ 1위에 올랐을 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이란 평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 위스키 족보에 스코틀랜드 아닌 지역 위스키로는 일본 위스키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자 중국 호사가들이 달려들었다. 만들어 놓은 수량은 적은데 수요가 폭발하자 일본 위스키 값은 터무니없이 올랐다.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의 최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야마자키 시리즈. 25년은 1999년 창업 100주년을 맞아 특별 한정판으로 내놓은 것이다. 한해 1200병만 출시한다. 출시 가격은 12만엔이지만 수급 불균형으로 시장에선 150만엔대에 거래되고 있다.

▶폼페이오가 받았다는 위스키는 세계 호사가들이 좋아한다는 산토리의 ‘야마자키 25년’일 가능성이 있다. 야마자키가 G20이 열린 오사카 지역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데다 당시 시장 가격이 그와 비슷했다. 지금은 1000만원이 넘는다. 빈 병만 100만원 가까이에 팔린다고 한다. 그 위스키가 누구 목구멍으로 넘어갔는지도 궁금하지만, 남의 것을 베껴서 그보다 더 좋은 최고를 만드는 일본인들의 기술 집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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