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코로나 격차’도 고민해야할 때

이위재 사회정책부 차장 2021. 8.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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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K양극화’ 갈수록 심각
코로나 여파에도 빈부 격차 존재
취약계층은 더 심각한 타격 입어
코로나 끝나면 극복해야 할 숙제 남겨

가끔 찾던 동네 밥집이 올 초 문을 닫았다. 46㎡(14평) 남짓한 매장에 15석가량 의자를 놓고 손님을 받던 곳이다. 제육볶음 정식이 8000원인데 고기를 무한리필해주는 인심 덕에 인기가 쏠쏠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학생들이 회식 장소로 이용하는 광경을 종종 보곤 했다.

직원 없이 사장 혼자 요리하고 주문 받고 식탁 치우면서 꾸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직원을 3명까지 뒀지만 인건비가 점점 부담스러워져 2년전 하나둘 내보냈다고 했다. 10년 넘게 산전수전 겪으며 동네 밥집으로 어렵게 명맥을 이어 왔지만 ‘코로나 파고’는 넘지 못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외식 인구가 줄고 주 고객층인 대학생들마저 온라인 수업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학교에 나타나질 않으니 자연히 매출이 급락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년은 대출과 정부 지원금으로 겨우 버텼지만 터널의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자 백기를 들었다. 빈 가게 창문엔 6개월 가까이 ‘임대’ 딱지가 붙어있지만 아직 새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 장기화로 자영업자, 소상공인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식당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한 휴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바이러스야 취향이 없겠지만 지나간 자리는 차별의 흔적을 남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K자형 양극화’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대기업과 대형 금융회사들이 올 들어 역대 최고 실적을 자랑하는 가운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계속 신음하고 있다.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가 드러낸 건 질병에 대처하는 각국 행정력과 준비력 차이뿐만이 아니다. 각국 내부에 존재하는 격차다. 중산층 이상 구성원이나 공공 부문, 대기업 종사자는 그저 불편함 정도를 느끼는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나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들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중산층 이상에게 코로나는 생존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여가나 모임을 전처럼 즐길 수 없는 데에서 오는 불편과 답답함이 클 것이다. 한 조사기관이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봉 인상률을 조사했더니 등기이사는 7.3%, 미등기 임원 4.7%, 직원 3%였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들 매출이 -20%(신한은행 분석)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밥집 같은 외식업체들은 -44.4%였다. 코로나 체감 온도에도 엄연히 격차가 있는 셈이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기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20.2%로 관련 통계를 잡은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코로나 격차는 생활 곳곳에 존재한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만원 버스와 지하철 시루에 몸을 싣고 일터로 나가는 이들에겐 코로나보다 일감이 끊기는 게 더 두렵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에 사람이 가득한데 왜 집회나 종교 모임은 못하게 하느냐”는 항의는 허탈하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없으면 그들은 생계가 끊긴다. 누구처럼 온라인 원격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단감염이 두드러졌던 곳을 떠올려보면 요양병원, 정신병원, 콜센터, 물류센터, 교도소… 하나같이 소외된 계층들이 밀집된 장소였다.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취약 계층이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은 3.62배 더 높았다.

교육 현장에선 코로나 이후 원격 수업 증가로 상위권과 하위권 격차가 커졌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 교육부가 중·고교 학생들 국영수 성적을 놓고 코로나 전후를 비교했더니 상위권 비율은 1.3~2.3%p, 하위권은 3.5~5.7%p 증가했다. 아이들 학력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학교에 가질 못해 부족해진 학습량을 사교육으로 보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런 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집값이 싼 지역,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남는 시간을 게임에 많이 쓰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난한 집’에 사는 아이들은 코로나 이후 게임으로 보내는 시간이 41% 더 많았다. 교육계에선 이렇게 유소년 시절 코로나 때문에 쌓이게 된 격차는 나중에 더 큰 사회적 격차로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전쟁이 끝나면 모두 끔찍했던 기억을 잊으려 한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나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를지라도 우리 사회의 격차를 드러낸 이 전염병이 남길 상처를 봉합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는다. 지금은 눈앞의 코로나와 싸우기에도 바쁘지만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작가 알베르 카뮈가 1947년작 소설 ‘페스트’에서 말한 것처럼 “혼자만 행복하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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