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한식이란 무엇인가

정재훈 약사·'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저자 2021. 8.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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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법은 변한다. 1930년대 찌개 레시피를 찾아보면 볶아서 끓이는 방식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기름과 갖은 양념을 넣고 재료를 주물러 준 다음 물 또는 쌀뜨물을 넣고 끓이는 식이 주류다. 1960년대 신문 기사에 비로소 볶은 다음에 끓이는 방식이 등장한다. 생강과 돼지기름을 먼저 볶아서 역한 냄새를 제거하고 다시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고 볶은 뒤에 물이나 뜨물을 넣어 끓여줘야 제맛이 난다는 거다. 그렇다고 모든 찌개가 재료를 볶다가 끓이는 방식으로 바뀐 건 아니다. 재료에 물을 넣고 바로 끓이는 방식과 병존했다.

일러스트=김도원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재료를 먼저 볶다가 물을 붓고 찌개를 끓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재료를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는 방식의 찌개를 영어로 번역할 때 ‘브레이즈’(braise)라는 단어를 종종 쓴다. 그렇지만 정확히 같은 방식은 아니다. 브레이징은 재료를 센 불에서 가열한 뒤 여러 시간 약한 불에 끓이지만 찌개는 7~8분만 끓여 먹는 경우도 많다. 볶은 다음에 끓이는 방식이 서구 요리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중국 요리 영향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조리 시간을 놓고 보면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은 다음에 물을 붓고 찌개를 끓이는 건 한국식 중화요리에서 짬뽕을 끓이는 방식과 유사하다.

한식이 무엇인가 논할 때 우리는 주로 재료에 집중하고 조리 기법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도구와 조리 기법 역시 한식의 일부다. 집에서 가스레인지 불로 프라이팬에 불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서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 사용된 도구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리스 로마에서 기원한 팬에 다시 20세기 미국에서 개발한 원천 기술을 프랑스에서 특허 내 넌스틱(non-stick·들러붙지 않는다는 의미) 코팅을 입힌 게 지금의 프라이팬이다. 가스레인지는 19세기 초 스위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도하다가 결국 영국에서 상업적으로 생산했다.

음식 세상에 외딴섬에서 홀로 만든 순전 무결한 전통 음식이란 없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고 새로워진다. 그렇게 남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우리만의 음식이 만들어진다. 무엇이 한식이고 무엇이 한식이 아닌가 선을 긋는 데만 열을 올리지 말자. 그보다는 우리 음식에서 무엇이 변화하며 무엇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지 들여다보는 게 더 재미있다.

/정재훈 약사·'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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