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그 남자네 집'의 민어와 굴비
[경향신문]
“다행히 월급날은 쉬 돌아왔고 계절 따라 제철 음식도 새록새록 했다. 복(伏)이 들자 시어머니는 민어 먹을 때라고 귀띔을 했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속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허구와 자전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가 느낀 첫사랑의 두근거림, 두근거림만으로 못 이긴 환멸, 월급날이 있는 다른 남성과 이룬 혼인, 피로와 우울이 감도는 시집살이, 일탈, 출산, 회한의 순간순간이 발휘하는 흡인력은 텔레비전 연속극 못잖다. 이야기가 서울, 1950년대를 따라 펼쳐진다. 그러느라 서울깍쟁이들의 요란한 음식문화도 펼쳐진다. 복 들자 민어라 했다. 시어머니는 민어를 이렇게 다루었다. “민어의 몸은 횟거리와 찌갯거리, 그리고 구이용으로 나누어졌다. (…) 애호박 썰어 넣고 고추장 풀고 끓인 민어찌개 맛은 준칫국과는 또 다른 달고 깊은 맛이 있었다.”
혼인 전까지 전쟁 통에 사라진 집안의 남성을 대신해 미군 부대에서 일하며 가장 노릇을 했던 ‘나’는, 한때 누구나 우러러보는 여대생이었다. 새색시가 되고서야 조리질과 밥물 맞추기를 배운 ‘나’가 아는 생선이라고는 꽁치가 다였다. 한데 남편네는 봄이면 준칫국을 끓였다. 새삼스럽게 들여다본 준치는 “아름다웠다. 납작한 몸을 감싼 은빛 비늘은 셀로판지처럼 얄팍하고도 견고한데 물보라처럼 은은한 무지갯빛이 감돌았다.”
굴비도 민어 못잖게 “여름철을 살맛 나게 하는 미각이었다”. 제때 구한 물 좋은 조기로 말린 굴비는 “껍질과 살 사이에는 기름기가 많아 북어처럼 메마르지 않았다. 점심 반찬을 하려고 짝짝 찢고 나면 손바닥에 기름이 흘렀고, 육질은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러니 남편은 어려서 매운 것은 입에 안 대고, 소고기는 섭산적만 먹고, 외갓집 갈 때에는 먹기 좋게 저민 암치를 허리춤에 찔러 넣고 다녔다. 암치, 싱싱한 민어를 갈라 내장 빼고 소금 질러 말린 어포다. 민어의 알집은? 당연히 어란이 된다. 조기의 알집도 별미였다. “특히 단단하게 잘 마른 알 맛은 조금 맛본 어란 맛 못지않았고, 빛깔은 투명한 조니 워커 빛깔이었다.” 요란하고도 섬세한 그 손길에다 민어찌개에는 보리고추장, 민어회에는 찹쌀고추장 바탕의 초고추장, 민어구이는 연탄불이 아니라 숯불이어야 하는 그 감각은, 그러나 ‘나’의 것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 치레는 남편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전쟁 전과 같은 형편이 아님에도 하루 잘 먹자고 열흘을 굶고, 안 되면 외상을 해서라도 마련한 치레였다. 안나 카레니나의 그것과 닮은 피로와 우울은 이런 데서 자랐다.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음식을 마치 콩나물국 먹듯이 예사롭게 먹는 그들 모자에게 이상한 이질감을 느꼈다”. 첫사랑과 처음 마주 앉은 포장마차는 구공탄불이 타고, 막사기 대접에 오뎅꼬치, 슴슴하고 들척지근한 국물뿐이었다. 하지만 ‘궁기’는 없었다. 여기 이르러 짐짓 피로와 우울과 이질감과 궁기를 나란히 세워본다. 오늘이 대먹방시대임이 새삼스럽다. 고인이 성찬 앞의 궁기, 궁기보다 더 깊은 궁기를 서술했음이 새삼스럽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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