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금강산과 북한산

- 2021. 8. 5. 22:5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대체로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명산을 꼽을 텐데, '우리나라'의 범위를 한반도 전체로 키워 본다면 십중팔구 금강산이나 백두산을 꼽기 쉽다.

이 점에서 서울에 살면서 한 계절에 한번이나마 북한산을 찾는 사람이 금강산을 못 가 보는 걸 애통해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가까이 있는 좋은 산은 가 볼 생각도 안 하면서 유독 못 가는 산만 쳐다보고 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대체로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명산을 꼽을 텐데, ‘우리나라’의 범위를 한반도 전체로 키워 본다면 십중팔구 금강산이나 백두산을 꼽기 쉽다. 특히, 금강산 같은 경우라면, 실제로 가서 보면 기암괴석이 빚어내는 절경이 사람의 혼을 빼놓을 지경이다. 나야 남북관계가 좋을 때 운 좋게 가 보았으니 그런 말이나 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에서는 그런 명산엘 가 보질 못하니 한스럽기만 할 터이다.

그러나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박지원은 뜻밖의 의견을 남겼다. “전에 언젠가 나는 한양의 도봉산과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금강산은 그 골짜기가 일만이천봉으로 기이하고 높고 웅장하고 깊지 않은 게 없다. 들짐승이 움켜쥔 듯, 새가 날아오르는 듯, 신선이 허공으로 치솟는 듯, 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듯 각양각색이다. 일찍이 신광온과 함께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멀리 바라다본 일이 있는데, 마침 가을 날씨가 푸른 가운데 석양빛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그야말로 천하의 기이한 모습이지만 윤기 나는 자태가 없어서 금강산을 위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도강록’, 열하일기)

금강산이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기암괴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산이라고 하면 돌만 있는 게 아니고 흙도 있으며, 흙이 있어야 숲이 울창해지는 법이다. 이 점에서 박지원은 흙만 있는 흙산은 원만하고 온화하지만 특별하고 기이한 맛이 적고, 돌만 있는 돌산은 특별하고 기이하지만 원만하고 온화한 맛이 적다고 파악한 듯하다. 산에 있어서 돌과 흙의 황금비율이 얼마 정도인지는 객관적인 기준을 잡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균형이 잘 맞는 산으로 서울의 도봉산과 북한산(삼각산)을 꼽았던 것 같다.

이 점에서 서울에 살면서 한 계절에 한번이나마 북한산을 찾는 사람이 금강산을 못 가 보는 걸 애통해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가까이 있는 좋은 산은 가 볼 생각도 안 하면서 유독 못 가는 산만 쳐다보고 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금강산은 기이한 맛에 좋은 걸 알고, 북한산은 온화한 맛에 좋다 여기고 즐길 때, 금강산도 살고 북한산도 산다. 거꾸로 금강산은 온화함이 적으니 문제고, 북한산은 기이한 맛이 적으니 안타깝다고만 여길 때, 금강산도 죽고 북한산도 죽는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 고전문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