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는 엄마가 뭐 어때서! [삶과 문화]

2021. 8. 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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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수사물은 사건 현장에서, 법정드라마는 법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애는 한국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다양한 장르물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로맨스 장르에 관해선 한국 드라마가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란 자식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옳은 것인데, 엄마가 욕망을 가져? 심지어 계속 연애를 한다고? 우리는 그런 엄마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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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알고 있지만' 영상 캡처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수사물은 사건 현장에서, 법정드라마는 법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애는 한국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다양한 장르물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로맨스 장르에 관해선 한국 드라마가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의 로맨스에서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것 중 하나는 ‘과도한 첫사랑 서사’였다. 청소년기나 청년기로는 충분히 운명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한국 드라마에는 유년기의 인연이 운명적인 첫사랑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미취학 아동 시절 정도는 되어야 그 ‘순수한’ 운명에 정당성이 생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운명적인 첫사랑은 로맨틱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는 우리가 성인이 되어 경험하는 다른 모든 사랑들을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운명’이라는 이름 아래 연애 관계가 함축하고 있는 폭력과 권력 관계를 ‘열정’과 ‘헌신’으로 둔갑시킨다. 그런데 대부분은 첫사랑이 아니라 n번째 사랑에서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jtbc 드라마 '알고 있지만,'은 좀 더 현실적인 연애와 사랑에 관한 논쟁적인 지점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글은 ‘연애하는 엄마’를 다루고자 한다. 연애를 반복하는 엄마에게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 나비, 그리고 나비의 이모가 나누는 대화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편견에 도전한다.

그래도 난 네 엄마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상처받고도 또 새로운 사람 만나서 열심히 사랑하는 거. 네 엄마가 그러더라. 연애란 게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 골라서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가장 특별한 사람이랑 하는 거라고.
jtbc '알고 있지만,'

이 대화를 들으며 심지어 ‘엄마’인 나조차도 ‘엄마라는 여성의 사랑과 욕망’이 뭔가 부적절하다고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란 자식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옳은 것인데, 엄마가 욕망을 가져? 심지어 계속 연애를 한다고? 우리는 그런 엄마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엄마는 미디어에서 불우하며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존재로 그려지곤 했다.

이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 있는 여성이어서는 안 된다. 유구한 역사의 ‘성녀-창녀 이분법’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은 남성들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거나 아니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엄마일 뿐이다. 이 시스템에서 그 외의 여성들은 뭔가 잘못되었거나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 이데올로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엄마에게서 가정에 대한 헌신 이외의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최면을 건다. ‘엄마’는 인간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지만,'에서는 일반적으로 ‘끊임없이 실패하는 연애를 계속하는 엄마 같지도 않은 철없는 엄마’인 나비 엄마에 대해 ‘상처를 극복하고 또 사랑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은 사랑,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도 실패가 아닐 수 있다고. 이제는 이런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었다. ‘정상’에서 벗어나는 척 오히려 ‘정상’에 집착하는 출생의 비밀과 치정극 말고, 정말 새로운 시대에 맞는 평등하고 도발적인 이야기들 말이다.

이지영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BTS예술혁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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