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냉전해체 직후부터 미 대체 노린 장기전"
새 책 <장기전> (롱게임) 통해 중국 전략 분석
"지역 패권, 저개발국 중심 세계 패권 동시 추진"
"미, 중 패권 도전 맞서 비대칭적 대응 나서야"
중 전문가, "대중 강경론 위해 중국 악마화"
"바이든 행정부 비대칭적 대응 이미 시작" 장기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두 차례 이뤄진 미-중 고위급 접촉이 성과 없이 막을 내리면서, 양국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증폭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앵커리지에 이어 7월 중국 톈진에서도 양쪽은 인식의 간극만 드러냈을 뿐 아무런 접점도 찾지 못한 채 가시 돋친 설전만 주고받았다. 미-중이 ‘새로운 형태의 냉전’으로 빨려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5일 러쉬 도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중국 국장이 최근 펴낸 <장기전>(롱게임) 내용을 인용해 “중국이 미국을 대체해 국제질서를 세우려 한다는 게 미국 정치권의 초당적 인식”이라고 전했다. 미 브루킹스연구소 중국전략구상 책임자 출신인 도시 국장은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대중국 강경 대응을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미국 질서를 대체하기 위한 중국의 대전략’이란 부제가 붙은 책에서 도시 국장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코로나19 등의 여파 속에 중국이 명시적으로 미국의 세계적 지위를 흔들면서, 자체적인 세계 질서 수립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며 “중국은 지역 패권과 세계 패권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미국의 최대 도전자란 점은 자명하며, 미국이 중국의 초강대국 부상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다음 세기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초 출간된 도시의 책은 이미 미국 내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향을 부르고 있다. 미-중 갈등 증폭 속에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장기적 전략 의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국장은 “중국은 1980년대 말 냉전이 막을 내린 직후부터 장기간에 걸쳐 미국을 대체하기 위한 전략적 노력을 지속해왔다”고 주장한다. 냉전 시절 소련에 맞서 미국과 일정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중국이 △소련 붕괴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운동 △제1차 걸프전쟁이란 ‘3대 충격파’가 이어지면서, 자국을 겨냥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도시 국장은 ‘미국 질서를 대체하기 위한 중국의 대전략’을 시기적으로 3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첫째, ‘3대 충격파’가 시작된 1989년부터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까지다. 이 시기 중국의 전략은 미국의 영향력, 특히 아시아 일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는 게 도시 국장의 설명이다.
둘째, 2008년~2016년 시기다. 도시 국장은 “금융위기로 상징되는 ‘미국의 쇠퇴’를 감지한 2008년부터 중국은 아시아 차원에서 지역패권 수립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짚었다.
마지막 단계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된 2016년 이후 시기다. 이 무려부터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을 낮추는 한편 자국의 패권 기반을 세우기 위한 노력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한다. 도시 국장은 이를 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개인적인 성향이 공격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중국이 상대적으로 자국의 힘이 커졌다고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도시 국장은 “이 시기에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미국 내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한 각성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동시에 인식했다”며 “중국 입장에선 세기적 대변화 시기에 접어들었으며, 중국 건국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49년까지 미국을 대체해 세계 각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도시 국장은 중국의 세계질서 구상에 대해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워 아시아 일대에서 중국의 영향권을 형성하고,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아우르는 부분적 패권을 추구할 것”이라며 “여기에는 주일, 주한미군 철수와 대만 통일, 동·남중국 영유권 분쟁 해결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대응책은 뭘까? 도시 국장은 이른바 ‘비대칭적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무대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구도 형성을 막고, 일대일로 구상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는 등의 방식이다. 동시에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 유지 △첨단 과학·기술 분야 투자 재확대 △인도-태평양 일대 미군 태세 유지 △동맹 강화 등 미국의 ‘전통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 국장은 “미-중 경쟁은 기본적으로 지역과 국제 질서를 누가 이끌어갈 것인가와, 지도적 위치에 오른 국가가 어떤 형태의 질서를 만들어낼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경쟁”이라며 “위계 질서 속에서 특정 국가의 역할을 결정짓는 경쟁인 만큼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적 속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도시 국장의 책은 중국에선 아직 공식 출간되지 않았지만, 미리 내용을 접한 중국 쪽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판적 회의론’에 가까워 보인다.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려 한다’는 인식이 미 정치권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룬 상황이며, 이에 따라 강경론이 득세하면서 양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제관계 전문가인 주펑 난징대 교수는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미국의 관점만으로 중국의 전략을 과장했다”며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거나, 기존 세계질서와 미국의 패권을 대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내에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국제관계 전문가와 정부 당국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도시 국장의 주장은 중국을 공세적으로 악마화해, 미국의 대중국 강경정책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중 관계 전문가인 웨이종요우 푸단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 대중국 정책 조율에 집중하고, 주요 7개국 회담을 통해 일대일로를 대체할 새로운 인프라 투자 구상을 내놓는 등 이미 도시 국장이 제시한 ‘비대칭적’ 대중국 정책을 채택한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이어 웨이 교수는 “물론 중국은 미-중 관계가 대결 구도로 흐르며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동시에 대만·신장·홍콩 등 핵심 이익과 관련해선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간 협력과 대결을 구분하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선 대결을 통한 압박에 나서면서 특정 분야에서만 협력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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