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총기 범죄에 점점 커지는 '총기 업체 책임' 목소리
[경향신문]
총기 범죄가 일어나면 총을 만들고 판매한 회사들도 책임을 져야 할까. 총기 사건이 잦은 미주권에서는 관련 업체들도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에서 일어나는 총기 범죄에 미국 총기 제조·판매 업체들의 책임도 있다며 해외 정부 최초로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총기 회사가 범죄로부터 면책되는 법안을 손보려 하고 있다.
멕시코 언론 멕시코뉴스데일리는 4일(현지시간) 멕시코 외교부가 미국 연방법원에 미 총기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피고는 스미스앤드웨슨, 베레타, 콜트, 글록 등 총기 제조 업체와 인터스테이트암즈 등 총기 도매상을 포함한 11개 업체다. 멕시코 외교부는 이 업체들이 멕시코로 총이 밀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멕시코 카르텔을 표적으로 총을 판매해왔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법률고문인 알레한드로 셀로리오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밀거래된 총기가 초래하는 피해가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의 1.7~2%에 달한다”며 “적어도 100억달러(약 11조4000억원)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에서는 총기 구매 조건이 까다로워 당국의 구매 허가를 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허가받은 총기 판매점이 전국에서 한곳 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마약 카르텔이나 범죄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총을 밀수하고 있다. 멕시코 외교부에 따르면 자국으로 밀매되는 무기 70%가 미국에서 오는 것으로 추산되며 2019년 밀거래 무기와 연관된 살인 사건은 1만7000건을 넘었다.
미 총기업계 이익단체인 전미사격스포츠재단(NSSF)은 총기 범죄의 책임은 멕시코 정부에 있다고 반박했다. 멕시코 정부가 발표한 밀수 무기 관련 통계도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미국 내에서도 총기 난사 범죄 피해 생존자나 유가족이 총기 업체들을 고소하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2012년 코네티컷주 샌드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2017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뮤직페스티벌 총기 난사 사건, 2018년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2019년 캘리포니아주 유대교회당 총기 난사 사건 유족들은 범인이 사용한 총기 제조업체를 고소했다. 오하이오주 데이턴 총기 난사 사건 피해 생존자와 유족들은 지난 1일 대용량 탄창을 만든 한국 업체 경창산업을 고소했다.
소송을 제기하는 측은 “총기 업체가 엄격한 신원조회 절차 없이 총을 무분별하게 판매하고 있으며 오히려 범죄자에게 판촉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호 목적과는 다르게 대용량 탄알을 장전할 수 있는 총을 만들어 총기 난사 사건의 빌미를 줬다는 점도 소송의 이유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인 2005년 제정된 ‘무기 합법거래 보호법’(PLCAA)으로 인해 총기 업체를 처벌하거나 이들로부터 보상을 받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법은 주·연방법을 위반했거나 위험인물에게 주의 없이 총기를 판매했을 경우를 제외하고 총기판매자나 제조자에게 총기 범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애덤 윙클러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법학과 교수는 “멕시코 정부의 소송이 새롭고 대담하지만 승산은 크지 않다”며 “총기업체들은 20년 넘게 광범위한 면책을 누리고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바이든 정부 들어 무기 합법거래 보호법을 손보려는 움직임도 관찰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총기 제조사에 대한 면책조항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지난달 총격 사건 민사재판에서 총기 제조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하지만 공화당과 미국총기협회(NRA)는 법 개정이나 폐지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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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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