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처럼 말벗, 임종도 대신 지켜.. 손 꼭 쥐며 "외로워마세요"

국내 코로나 환자가 처음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나며 20만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2100명 넘는다. 지금도 한 달 가까이 매일 1000명 이상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사태는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생(生)과 사(死)가 교차하는 의료 현장에서 수천 명 간호사들이 분투하고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지키는 간호사들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것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지만, 간호사들이 가장 힘든 순간은 돌보던 환자가 삶을 마감했을 때다. 코로나 환자가 숨지면 다른 흔적들은 모두 소각되고 주민등록증과 휴대폰 둘만 남겨진다고 한다. 유족들도 감염 위험 때문에 CCTV나 유리창 너머로 시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삽관 튜브를 제거하고, 핏자국을 닦고, 배설물을 치우는 등 환자가 화장터로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 동행하는 일은 오롯이 간호사 몫이다.

부산 대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김민주(49) 간호사도 그런 경험이 있다. “80대 할머니가 확진 판정을 받고 음압 병실로 실려왔는데 심장에서 시한폭탄 타이머가 작동된 느낌이었어요. 주변에는 온통 방호복을 입어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뿐이고,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할머니는 며칠 버티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시신을 닦으며 ‘한평생 사시느라 고생했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중환자 병동에서 근무하는 노지인(29)씨는 지난 4월 의식이 없는 한 환자의 머리맡에서 흰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면회가 불가능하자 가족이 ‘한 번만 읽어달라’고 부탁하며 놓고 간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빠, 가족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중략)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 아빠도 포기하지 말고 꼭 이겨내주세요. 아빠 퇴원하면 우리 꼭 바다 보러 가요. 사랑하는 딸이.” 편지를 또박또박 읽은 노 간호사는 “저희도 포기하지 않을게요”라고 환자에게 말을 건넸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게 청각이라는데, 딸의 마음이 전달됐을 것이라 믿었다”며 “환자에게 끝까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환자 건강하게 퇴원할 때 가장 보람
여름이 되면서 간호사들의 고충은 더 커졌다. 서울 마포구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채종려(29) 간호사는 “에어컨을 켜도 부스 안팎의 온도가 1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며 “가장 큰 고충은 더위”라고 했다. 그나마 선별진료소는 에어컨이라도 틀 수 있지만 감염 위험으로 에어컨 사용이 금지된 음압 병실은 더 힘들다. D레벨 방호복을 입으면 사우나 수준으로 땀이 흐른다.

지난 1월부터 코로나 병실에서 근무한 삼성창원병원 간호사 고영애(41)씨는 “음압 병동 내부의 온도가 높아 아이스 팩조차 금세 녹아 미지근해진다”며 “더위에 지칠 땐 숨을 크게 고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보호복을 벗을 땐 따가운 몸을 돌볼 새도 없이 기다리는 동료를 위해 빠른 속도로 샤워한다.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그만한 보람도 없다. 고씨는 지난 2월 코로나 환자들을 진찰하다 확진된 내과 의사를 두 달 동안 간호했다. “같은 의료진이라 그런지 완치되어 퇴원할 때 가족을 떠나보내는 기분이었어요. 환자가 인사하며 ‘엄지 척’을 할 때 기쁨의 눈물이 나더라고요.”
◇환자 돌보다 자신이 감염되기도
간호사들은 감염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1년 반 코로나 사태 동안 415명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다 코로나에 감염됐다. 의사(113명), 한의사(11명) 등보다 많다. 대구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A 간호사는 작년 3월 시작된 1차 대유행 당시 환자를 돌보다 석 달 만에 확진 판정을 받고 자신이 일하던 병동에 입원했다. 인력 부족으로 의료진은 점점 지쳐가는 상황에서 확진 판정을 받자, A 간호사는 가장 먼저 동료들에게 미안했다고 한다. “남은 동료에게 짐을 더한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나름 방역 수칙을 지켰다고 자부했는데 확진 판정을 받으니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습니다.” 그는 현재 건강을 회복해 다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조금 더 다 같이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서로 격려해주고 응원한다면 지금의 위기도 또다시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땅속 묻은 김치가 맛있는 이유… 버번 위스키에 적용하면 어떨까
- 하루 163명만 입산… 자신만만 올랐다가 겸손해져 하산하는 ‘신들의 안식처’
- [경제계 인사] 다이닝브랜즈그룹
- “눈보라도 트럼프도 우리의 일상을 막을 순 없어”
- 부정청약 논란에 ‘아들 가정사’ 꺼낸 이혜훈
- 다주택자 중과세 부활한다
- 서울 초등학교도 ‘입학생 0명’ 쇼크
- [바로잡습니다] 1월 23일자 A25면 “여당도 민주당, 야당도 민주당…” 제목의 뉴스 읽기에서 외
- 장남과 파경 상태라던 며느리, 시댁 ‘로또 청약’ 맞춰 전출입 반복
- 이혜훈 “보좌진 폭언 당일 사과” 당사자는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