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직행하는 군대 음식, 식사비 인상만 정답일까

한겨레 2021. 8. 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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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부대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하고 있는 현역 장병입니다.

장병 1인당 식사비는 8790원이니, 오늘 하루만 저희 부대의 다섯 식당에서 나왔을 1000인분 가까운 양만으로 870만원, 곧 1000만원 가까이가 허무하게 쓰레기통에 들어간 것입니다.

평소에 장병들은 군마트를 이용해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이고, 부대 내 치킨점이나 배달음식 등을 통해 급식을 대체한 지도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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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현역 장병 | 익명

일선 부대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하고 있는 현역 장병입니다.

만약에 식구가 다섯명인 집에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끼니마다 5인분의 음식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모두가 등교나 출근을 했을 점심에 다섯명의 끼니를 만드는 게 맞는 걸까요? 아침도 잘 안 먹는 아이들 몫까지 매일 아침마저 5인분을 만든다면 그 사람은 아마 경제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군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있는 부대에는 간부식당을 비롯하여 대형 식당, 작은 식당을 포함해서 5곳이 넘는 식당이 있습니다. 최근 주말, 병사 식당에서 하루치 잔반량을 확인하였더니 아침에 100인분, 점심에 400인분, 저녁에 300인분 가까운 음식물 쓰레기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반찬을 제외하고 밥솥의 양만 확인하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동료 전우들이 먹다 남긴 음식이 아닙니다. 아예 식판에조차 오르지 못하고 버려진 음식들입니다. 그 주말은 그나마 양호한 편입니다.

장병 1인당 식사비는 8790원이니, 오늘 하루만 저희 부대의 다섯 식당에서 나왔을 1000인분 가까운 양만으로 870만원, 곧 1000만원 가까이가 허무하게 쓰레기통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방부 발표대로 1인당 식사비를 1만원으로 올리고, 전국 부대로 그 규모를 넓히며,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까지 합친다면 그 규모는 어떻겠습니까? 하루에만 몇억원에 가까운 국민 혈세가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셈입니다. 한달이면 동료 장병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설 개선과 보호장비, 신형 무기 구입에 충분할 예산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결식 어린이 청소년과 독거노인, 노숙인을 다 먹이고 해외의 굶주린 이웃들도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음식들입니다.

장병 1인당 식사비, 지금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조리병들은 이미 매주 냉동 한우, 한돈, 닭, 수산물 등 20~30㎏에 이르는 고급 식재료들과 40㎏의 쌀가마니를 옮기며 허리가 끊어지고 팔다리가 쑤시고 손목을 다치기 일쑤입니다. 그 넘치는 분량을 바쁘게 처리하느라, 백신을 맞고 열흘 가까이 팔이 아파도 하루만 쉬고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의 부실급식 문제는 간식 등을 구할 수 없이 도시락에만 의존해야 하는 격리생활에서 비롯한 일시적 현상일 뿐입니다.

평소에 장병들은 군마트를 이용해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이고, 부대 내 치킨점이나 배달음식 등을 통해 급식을 대체한 지도 오래입니다. 식사 선택권이 없던 20~30년 전 군대도 아니고 결식이 금지인 시대도 아닙니다. 더욱이 다이어트나 채식을 위해 급식을 이용하지 않는 장병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불필요한 식재료의 구매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고, 불필요한 음식 조리와 처분에 많은 장병들의 시간과 건강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넘쳐나는 음식 쓰레기는 부대 내 악취와 해충의 온상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들, 특히 저희 부모님의 소중한 세금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일을 직접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듭니다. 동료 전우들이 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과 시설에서 근무하며 꿈을 키울 수 있는 미래 자금을 쓰레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불쾌합니다.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 소중하고 충분한 국방예산을 음식물 처리 업자의 주머니로 넣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부디 국민의 세금이 매일 오물이 되어가는 이 현실이 꼭 바뀌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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