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의 너도 늙는다]추소비티나에게 경배를!

김은형 2021. 8. 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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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늙는다
1992 바르셀로나부터 2020 도쿄올림픽까지 8번 출전의 대기록을 세운 우즈베키스탄 체조 선수 옥사나 추소비티나. 도쿄/신화 연합뉴스

김은형

이 코로나 난국에 올림픽 강행이라니, 일본 정부를 내내 욕하다가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자 매일 주요 경기에 넋을 잃으며 ‘올림픽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역시 나이 든다고 그 호들갑 어디 가는 거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독 고령의 선수들이 눈에 띄는 건 내가 나이 들어서일까. 도쿄올림픽 공식 자료가 나온 건 아니지만, 2016 리우올림픽 때 참가 선수 평균나이가 27살로, 1988 서울올림픽 때보다 2살 더 많아졌다고 하니, 이번 올림픽 선수 평균나이도 27살 언저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의 김연경 선수를 비롯해 3으로 시작하는 나이는 놀랍지도 않고, 앞자리가 4 정도는 돼야 눈길이 간다. 한국 여자 탁구의 전설 양영자보다도 한살 많은, 신유빈과 싸웠던 58살 니샤롄을 비롯해 노장 선수들에 대한 기사도 가끔 나오는데 그중에 압권은 우즈베키스탄의 체조 선수 옥사나 추소비티나다.

1975년생인 그는 시몬 바일스가 태어나기 5년 전인 1992 바르셀로나 단체전에서 첫 메달을 땄다. 체조 선수는 유독 활동 시기가 짧아 올림픽에 두번 나오기도 쉽지 않다는데, 도쿄올림픽까지 무려 여덟번을 출전했다. 1996 애틀랜타에서 여홍철과 같은 무대에 올랐고, 올해 도쿄에서 여홍철의 딸 여서정과 같은 무대에서 뛰었다. 도쿄올림픽 공식 누리집에 들어가면 추소비티나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다른 주요 선수들처럼 짧은 경기 하이라이트 동영상 클립을 붙여놨는데, 그 클립만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나디아 코마네치를 연상시키는 포니테일에 입을 앙다문 열일곱살 소녀가 좀 더 성숙한 이십대 초반으로, 아이를 출산한 뒤 더 어른스러운 얼굴로, 짧은 커트에 더 단단한 근육질로 모습이 바뀌어가며 도마와 평균대, 이단평행봉에서 새처럼 나는 모습을 쭉 보고 있노라면 애니메이션 <업>의 눈물 쏙 빼는 도입부보다 생생한 시간의 질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는 아픈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30년 동안 등에 붙인 국기를 세번이나 바꿔 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너를 위해서 엄마는 나이 들 수도 없어”라고 말하는 애끓는 모성애도,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투지도 그만의 것은 아니다. 그 많은 선수들이 투지나 모성애가 부족해서 올림픽에 여덟번 출전하지 않는 게 아니다.

정말 궁금한 것은 “중단 없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까지 모질게 표현되는 육체의 노화를 추소비티나가 어떻게 거스를 수 있었냐는 것이다. 그는 2018년에도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가공할 능력이다. 자료를 뒤져봐도 매일 3시간씩 훈련하고 일요일에는 쉬었다는 게 전부다. 시간의 중력에 끌려가지 않는 신체적 능력은 아마도 타고난 것이겠지만,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노화에 굴복하거나 정신승리에 머무를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는 증거가 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어린 시절 운동을 시작했으면 추소비티나의 출전 기록을 깨지 않았을까 싶은 90살의 캐나다 육상 선수 올가 코텔코(1919~2014)를 4년간 연구 취재해 쓴 책 <젊어서도 없던 체력 나이 들어 생겼습니다>(원제: 무엇이 올가를 뛰게 했나)는 노화에 순응하지 않는 인간의 신체 능력에 관한 흥미로운 추적관찰기다. 100m 달리기에서 높이뛰기, 포환던지기까지 시니어 세계기록 26개를 가지고 있는 코텔코가 운동을 시작한 건 은퇴 나이가 한참 지난 77살이었다. 젊은 시절 폭력 남편을 떠나 아픈 딸까지 돌보면서 고단하게 살아온 그에게 운동할 여유가 생긴 게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나이 먹을수록, 그러니까 보통 사람이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갔다.

코텔코와 다른 고령 노인들의 신체 능력을 연구한 캐나다 맥길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중년 이후에 운동을 시작해도 괄목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40대에 체조를 시작해서 추소비티나처럼 올림픽에 나갈 수는 없겠지만 70대도 훈련만 하면 남녀 구분 없이 20대 젊은이처럼 심근산소량 수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50대 이후에 근손실이 급격히 늘기도 하지만 운동을 하면 나이를 거스르는 근육 줄기세포가 성장한다고 한다. 특히 50대 여성에게 이런 결과가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노화 관련 연구 결과들은 앞으로 올림픽에서 더 많은 추소비티나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20대에게 지레 양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게다가 ‘여성의 운동 능력은 50대부터’라니 이건 만나서 입운동을 하는 게 전부인 나와 내 친구들을 위한 구원의 메시지가 아닌가. 아직 늦지 않았다. 조금만 더 놀다가 시작해야지.

문화기획에디터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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