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유럽 홍수는 남의 일일까요?

전정윤 2021. 8. 4.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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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독일 서부 아르강 일대에서 지난달 15일(현지시각) 홍수로 집이 무너지고 물에 잠긴 모습. AP 연합뉴스

전정윤 | 국제부장

실시간으로 디지털 기사의 조회수나 댓글을 확인하다 보면, 통계로 확인하지 않아도 체감되는 경향성이 눈에 보입니다. 국제 기사의 경우, 독자들이 국제경제 기사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이 보입니다. 특히 해외 주식과 암호화폐(가상 자산)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투자와 관련된 정보성 기사들은 이전에 비해 고정 독자층이 꽤 두껍게 형성된 듯합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스치듯 던지는 금리 발언은 물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조변석개로 쏟아내는 각종 코인 관련 잡담조차 기사 출고 직후 조회수가 치솟다가 사그라드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곤 합니다.

국제경제 기사에 대한 이런 ‘민감성’과 더불어 유의미하게 눈여겨보게 되는 현상 중 하나는, 국제 기상이변 뉴스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기사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기상이변이 실제 우리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에 비춰 ‘나와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직은 덜하다는 뜻입니다.

“독일 같은 선진국이 홍수로 사람이 죽네.” 지난달 독일 대홍수의 피해(현재까지 사망 185명, 실종 26명)를 전한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남의 나라 일’을 ‘우리의 맥락’ 안으로 끌어오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움과 책임감이 수반된 고민이 남았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일상이 되어가는 기상이변, 심지어 ‘독일 같은 선진국’조차 준비되지 않은 재난이 우리를 비켜 갈 리 없기 때문입니다.

홍수 피해가 컸던 독일·벨기에와 인접한 유럽 몇 나라의 언론들은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정책 기사는 물론이고, ‘홍수로부터 내 생명, 내 집을 지키는 방법’ 같은 비상시 가이드라인 기사까지 쏟아낼 정도로 기상이변이라는 ‘뉴노멀’을 자신들의 문제로 집중 보도했습니다. 풍수해 보험 현황 소개, 홍수 때 물이 30㎝만 불어도 차가 휩쓸릴 수 있으니 운전하지 말라는 경고, 집을 고칠 거면 콘센트 위치를 벽 위쪽에 설치하라는 제안 등 세세한 보도들을 보며 당면한 위기의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중국 허난성에서 “천년 만의 홍수”(현지 언론 추산)로 302명이 숨지고 50명이 실종됐을 때, 인접국인 우리나라의 언론 보도나 독자 반응에서는 전해지지 않았던 절박감입니다.

사실 독일은 유럽에서 최소 5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2003년 폭염 이후, 온실가스 감축 등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지구촌 기후변화 대응에서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온 나라입니다. 그런 독일에서조차 이번에 “아마도 천년 만의 홍수”(<뉴욕 타임스>)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은 뒤 “독일은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자국민을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디 벨트>)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나 모잠비크와 같은 개발도상국도 이런 방식(기상 위험 예보와 재해 대책)으로 극단적 기후에 따른 희생자를 불과 수십년 새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는데, 독일 정부는 남의 나라의 전례를 본받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독일에서는 기상경보뿐 아니라 뉴노멀 시대의 폭우를 감당할 수 없는 ‘낡은 하수 시설’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60만㎞에 달하는 독일 하수도는 악천후에 대비해 건설되지 않았고, 폭우가 쏟아지자 맨홀 뚜껑에서 오수가 역류했습니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 정도 호우를 감당하려면 지금보다 30배가량 큰 규모의 하수 시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일에서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함께 뉴노멀 시대를 대비하는 새로운 시도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경치는 좋으나 수해 위험이 높은 수변 지역에 건축허가를 내줘선 안 된다는 촉구부터, 땅을 깊이 파서 놀이터나 주차장을 지으면 호우 때 물이 고여 있다가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건축 실험 등 다양한 제안이 넘쳐납니다.

기후변화와 재난 앞에서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무기력해 보이긴 마찬가지지만, 크고 작은 변화와 시도들이 합쳐지면 위기 때 재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겨레>는 이미 기후변화팀을 만들어 국내외 기후 관련 소식을 선도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독자들이 국제뉴스를 보면서 우리의 기상예보, 재해 대책, 기반시설 상황에 관심을 가질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 편집국에서 국제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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