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 아닌 선택을 함에 있어서

한겨레 2021. 8. 4.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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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누나와 함께 오랜 시간 청년귀농을 가늠했습니다. 우리가 여태 누려온 도시의 삶과 겪어보지 못한 시골의 삶. 명문대 꼬리표를 최대한 이용하는 삶과 그 꼬리표가 오히려 '낙향\'이라는 낙인으로 있을 삶. 보통의 삶과 보통이 아닌 삶.

[엄마아들 귀농서신] 선무영 | 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인생은 비(B)와 디(D)사이 시(C)라죠.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 선택(Choice)의 연속. 갈림길이 여럿 있었습니다. 선택할 때마다 어머니는 늘 곁에 있어 주셨죠. 어머니 보시기에 제 선택이 불안하실 때면 늘 찾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누나. 형제간에는 강한 경쟁의식을 갖는다 해요. 가족 내에 먹이가 부족해지면 형제들 중 일부만이 살아남았던 기억이 디엔에이(DNA) 속에 남아 있다나요. 그래서인지 누나가 오랫동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누나는 만날 놀러 다니는 것 같은데 성적은 끝내주게 받아왔어요. 학원에 있어야 할 누나가 돌계단 앞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 걸 보기도 했죠. 같이 놀고 싶어서 아는 체해도 뭔가 사람대접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심통 난 적도 많습니다. 하루는 누나가 반장으로 뽑혔다며 울면서 들어왔어요. 하기 싫다 했는데도 뽑혔다며. 도대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에 거리낌 없는 동생이 보기에 누나는 비밀이 많고, 꼭 동생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언제부턴가 누나는 가족여행도 같이 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놀겠다며 함께 가지 않는 누나가 얄미운데, 엄마는 제게 ‘너는 친구 없니’ 하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셨죠. 그러니 제가 누나를 미워할 만도 하죠?

누나도, 저도 어른이 된 뒤에나 함께 갈 수 있었던 가족여행 때 비로소 누나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그때야 누나를 이해했고, 사랑받고 있는 동생이라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줄곧 대화는 이어지고 있어요. 로스쿨 갈 적에 누나는 인생 살며 3년 정도 미친 듯 공부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응원해줬습니다. 공부가 지겨워 몸부림칠 때도 누나에게 많이 의지했어요. ‘공부란 결국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예전처럼 오래 하지 못하겠다면 그 이유는 뭘까 생각해보라' 한 누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귀농하신 뒤로 누나와 함께 괴산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대로, 누나는 누나대로 ‘귀농'을 가슴 한켠에 품고 살았죠. 머지않아 시골에 내려가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누나의 첫말은 “보라는?”이었어요. 오히려 제 아내가 더 적극적이라 전하니 많이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누나와 함께 오랜 시간 청년귀농을 가늠했습니다. 우리가 여태 누려온 도시의 삶과 겪어보지 못한 시골의 삶. 명문대 꼬리표를 최대한 이용하는 삶과 그 꼬리표가 오히려 ‘낙향'이라는 낙인으로 있을 삶. 보통의 삶과 보통이 아닌 삶. 누나가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지 않았다면 아마 훨씬 격렬하고 입장 차이가 큰 대화가 되었을 겁니다.

네살 위 누나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런 누나가 대안학교 일을 시작할 때는 얼마간 경험 쌓고 공부를 이어가겠거니 생각했는데, 되레 점점 사명감을 갖춰갔어요. 이런저런 심리적 어려움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함께 삶을 고민하는 학교였습니다. 잠깐 봉사활동으로 누나 학교에서 용돈관리에 대한 수업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누나가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죠. 첫날 교무실에서 주의사항 등을 듣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새로 온 선생님들을 보겠다며 교무실에 들어왔습니다. 한 학생은 배가 아프다면서 약을 받아 갔어요. 누나는 매일같이 저렇게 아프다며 오는데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 없다 한다고 했습니다. 관심받고픈 마음이 강하니, 어머님으로부터 ‘응석을 받아주지 말아 달라’는 당부 사항이 있는 친구였어요. 함께 들어온 친구들 중에는 저보다 한참 덩치가 크지만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계속 박수를 치고 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보통 학교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어요. 누나는 학교 생활은 남다름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저마다 모양이 특별한 친구들은 남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불만이 가득한 채로 학교에 온다 해요. 그렇게 처음에는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나 있던 친구들도,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선생님들에게 존중받으면서 점점 나아진답니다.

누나는 대안학교에서 보통에 대한 집착을 버린 듯했어요. 원래는 굉장히 기준이 높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유연해지는 게 보였습니다. 박사 누나도 좋았겠지만 저는 지금의 누나가 훨씬 좋아요. 부족한 동생 지적하고 꾸짖기보다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니까요.

저와 같이 로스쿨에 다닌 친구들은 이미 변호사가 되었거나 곧 될 겁니다. 함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친구들은 일찍이 자리를 잡았죠. 저는 친구들과는 상당히 다른 선택을 해왔습니다. 제 선택에 후회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렇지만 고민이 가득한 순간에 머리를 모으는 식구들이 있으니 늘 제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만을 얻어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제가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따라 가까운 누나부터 마음 편히 내려올지도 모르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누나지만, 저는 누나도 저와 같은 고민을 했고, 어쩌면 저와 같은 결론을 내린 채 적당한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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