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선 "저출생 원인이 페미니즘? 디지털 성범죄 논문을 '남혐'으로 둔갑"

2021. 8. 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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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치적 비전의 부재와 무능을 가리기 위해 혐오의 물결에 올라타려는 행위를 멈추라

[윤지선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
1. <관음충의 발생학>의 목적은 저출생이 아니라 디지털 성착취 범죄 시스템 비판과 분석이다.

<관음충의 발생학>은 2019년 당시 대한민국을 관통했던 버닝썬 스너프필름 사건과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그리고 교실·화장실·대중교통 등 우리의 일상에 침습한 불법촬영까지, 디지털 성범죄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가동되는지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논문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현재도 수많은 아동과 여성이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엄연한 현상입니다. 이 범죄의 작동원리를 학술적으로 밝히고 분석하는 것이 저출생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당혹스럽습니다. 각종 매체에 매일같이 쏟아지는 범죄기사, 또 여성대상범죄 심리분석 연구보고서는 저출생을 유발하는 직접적 원인입니까. 대대적으로 억압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저출생은 청년의 불안정한 미래와 실업, 빈곤의 대물림과 계층 이동의 구조적 불가능성, 부의 편중화, 부동산 문제, 성차별적 사회구조 등.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의 총체적 부조리를 관통하는 사안입니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이를 다각적이고 심도있게, 무겁게 분석하고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캠프 측은 저출생의 원인으로 페미니스트를 지목합니다. 디지털 성착취 시스템을 드러내고 이 성차별적 폭력을 근절하자는 논문을 '남성 혐오', '건강하지 못한 페미니즘'이라고 지목합니다. 정치적 비전의 부재와 무능을 혐오의 물결에 편승해 덮으려는 것입니다.

책임감 있는 기성세대이자 지성인이라면 왜 우리사회에 디지털 성범죄 가해'집단'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폭력의 근절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는 해외에서도 심각하게 바라보는 특수한 현상입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지난 6월 발표한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보고서에서 한국사회 특유의 일상화·산업화된 디지털 성범죄를 분석하며 그 원인으로 성 불평등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성차별적 범죄 구조를 분석한 논문을 '저출생 유발 논문'으로 지목하다니, 정치인으로서 디지털 성범죄에 어떤 인식을 가지신 지 심히 의아합니다.

<관음충의 발생학>의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발생조건 분석은 '남성 혐오'로 호도될 간단한 성질의 내용이 아닙니다. 우선 가해자의 성별과 세대는 가해집단 발생조건 분석에서 매우 주요한 척도입니다.

"2018년 9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촬영범죄 피의자의 97%가 남성이며 피해자의 83%가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해자 남성/피해자 여성이라는 젠더구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범죄"(이선희, <사이버성폭력과 여성분노의 조직화>, 2018)

<관음충의 발생학>은 이를 근거로 한국 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남성과 아닌 남성(정상 한국남성) 간의 발생학적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두 집단의 발생학적 차이와 진화 양상의 차이를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저는 두 가지 상이하게 구별되는 곤충 집단 모델을 분석모델로 삼았습니다. 곤충은 두 가지 변태 과정을 거쳐 성장합니다. '불완전 변태 과정'은 곤충의 성장상태에 있어 형태나 기능이 연속적이고 동일한 경우입니다. '완전 변태 과정'은 곤충의 성장상태에 있어 그 형태나 기능이 완전히 단절적이고 불연속적이며 큰 변화가 있는 경우입니다.

세상의 모든 남아는 백지상태의 유연한 미분화의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점차 또래문화나 미디어, 가정교육을 통해 특정한 방식의 분화과정을 겪습니다.

어떤 남아는 무지에 의해 유튜버의 여성혐오 용어를 놀이로 체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장과 배움을 통한 깨달음으로 이전의 상태로부터 탈피하여 그 전과는 단절되고 변이된 방식으로 새롭게 진화하여 정상 남성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남아는 여성혐오 놀이를 체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불법촬영물을 남성성의 인증도구로 여기고 성착취를 경제적 이득과 권력의 도구로 이용해 나갑니다. 이전 상태와 어떤 단절이나 탈피 없이 성장해나갈 때 비로소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를 단절 없는 연속과정의 산물, '한국남성성의 불완전 변태과정'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정상 한국남성은 변환과 각성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집단과 완전히 질적으로 다른 진화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논지입니다. 이 논문은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발생학적 과정의 추이를 탐구한 것이며 남성 혐오 논문이 아닙니다.

2. '한남유충, 한남충, 관음충'이 들어가 있기에 저출생 유발하는 혐오논문이다? 학문적 맥락에서 '-충'의 용어를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발생 시스템에 따라 분석하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2019년 '충의 사회학'이라는 학회의 주제의식에 맞춰서 적은 논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사용되는 '~충'의 용어를 전면화해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발생 시스템에 따라 학술적으로 분석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제시되는 '한남유충·한남충·관음충'이라는 용어들을 일종의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로의 발생과 진화과정 각각의 국면을 드러내는 전략적 분석모델로 놓고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용어는 여성혐오 문화를 일상화된 놀이로 사용하는 각종 플랫폼 문화에 대한 비판이자 해당 용어들이 배태되게 된 사회맥락적 환경 요소들을 타격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시스템 비판목적의 용어입니다.

저는 남성은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로 성장하게 하는 각종 온라인 플랫폼 커뮤니티 인증 문화와 남성규범성 놀이문화에 대해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분석하며, 우리 사회의 체계적이며 구조적 모순의 메커니즘을 제시했습니다. 또 특수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사례를 분석하며 어떻게 10대 초반의 남아들이 디지털 성착취 시스템의 생산자로 유입되게 되는가를 고찰하며 관음충의 초기단계에서의 모방과 상호연대, 남성성 규범의 메커니즘을 분석했습니다.

따라서 위의 용어는 일반 남아를 표적하거나 특정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디지털 성착취 시스템 안으로 일부 남성들이 구조적으로 유입되는 발생과정의 특수한 국면을 지칭한 것입니다.

저는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의 발생 메커니즘을 각 단계마다 폭로함으로써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 초기단계의 범죄 유입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엄연한 사회범죄 현상의 원인과 작동원리를 분석하는 논문이 저출생의 원인이 아닌, 이러한 디지털 성착취 시스템이 만연하도록 좌시한 대한민국 사회구조의 부조리가 저출생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3. 디지털 성착취 시스템에 대한 비판논문을 저출생 원인으로 지목하기 전에 디지털 성착취 사건에 대한 정책부터 심도깊게 고안하고 제시하라.

제 논문은 특수한 디지털 성착취 시스템의 가해자 발생분석이라는 목적에 의해 집필되었고 이를 위해 일상화된 여성혐오 문화의 놀이화 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디지털 성착취 범죄 콘텐츠의 오락화 플랫폼과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이후 각 디지털 성착취 범죄 양상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도표로 제시한 논문입니다. 이를 일반남성이나 일반남아에 대한 혐오목적 논문으로 읽는 것은 논문에 대한 오독이거나 악의적으로 논문 일부표현을 맥락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폄하하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우리 사회의 일상과 공간 안에서 불법촬영 범죄물을 둘러싼 공유와 생산, 유희의 연대체가 집단적으로 결집될 수 있었던 이유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한민국 검⋅경찰의 무관심과 구조적 묵인으로 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한국남아들을 불법촬영물이라는 여성혐오적 조건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이를 성애적 흥분치의 폭발적 증대와 연동케하는 하는 남성 중심주의의 사회문화적 환경과도 연관성이 뿌리 깊습니다.

우리 사회 속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구조적 백안시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고 있는 제 논문을 '남성 혐오', '저출생 원인' 논문으로 지목하기에 앞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으로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정책적 대안과 이 현상에 대한 공감의 분노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제 논문에 대한 공격은 2021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과 저지의 움직임들의 일환으로서 특정 용어를 학문적 맥락으로부터 온전히 유리시켜 남성혐오 용어로 몰아세우고 각주를 문제시하며 한 개인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이며 이는 현재 대대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성차별주의자들의 반동의 흐름에 속해 있다고 보입니다.

대선출마를 앞둔 정치인이 너무도 손쉽게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페미니스트들에게 전가하는 성차별주의자들이 세상을 읽는 도식(프레임)에 동조하고 이를 부끄러움 없이 표명하다니 정치적 비전의 부재와 무능, 무지에 통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으시다면 대한민국 정치사회경제문화 시스템의 부조리부터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이 부조리를 분석, 비판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고견이 비록 쓰다할지라도 이를 쉽게 폄하하지 마시길 조언드립니다.

[윤지선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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