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해적도 누른 코로나
[경향신문]
실제 해적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낭만적인 인물들과는 딴판이다. “진짜 해적들은 신의도 법도 모르는 악당이다. 그들은 반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남의 손을 자를 수 있고, 강간과 약탈에 혈안이 되며….”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묘사한 해적이 현실적이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은 폭풍보다 해적이 더 두렵다. 기상상황은 예측이 가능해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더를 장착한 쾌속선을 탄 해적이 언제 어디서 중기관총과 로켓포를 들이밀지는 알 수 없다.
해양수산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해적 사건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 감소한 68건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적 사건도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각국이 군함을 파견해 자구노력을 펼친 영향도 있다. 그런데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인근 해역에서 해적은 줄었는데,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발생하는 선박·선원 납치 사건은 별로 줄지 않았다. 상반기 피랍 선원 50명은 모두 서아프리카 기니만 해역에서 해적의 손에 떨어졌다.
아시아 싱가포르 해협과 아메리카 카리브해 주변 해적은 단순 강도가 대부분이어서 좀도둑에 가깝다. 반면 아프리카 해역을 주무대로 하는 해적은 보다 조직화한 범죄단체와 유사하다. 선박과 선원을 납치해 선사나 국가에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납치 대상 선정, 해적질 감행, 협상 담당 등이 나뉜 해적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말리아 해적은 대부분 평범한 어민 출신이다. 선진국 어선이 대거 아프리카로 몰려와 물고기를 쓸어가고 폐기물을 무단투기했다. 바다가 황폐화해 삶의 터전을 잃은 소말리아 어민은 해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어·새우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한 기니만 연안은 한때 어업 관련 일자리가 고용의 25%를 차지했다. 그러나 선진국 원양어선이 남획을 일삼으면서 현지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겼다. 결국 해적은 어업의 글로벌화가 초래한 셈이다. 코로나가 일시적으로 해적을 누를 수는 있지만, 선진국들의 책임 등 근원적 요인을 무시하는 한 해적 문제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입꾹닫’ 산업부, 액트지오-석유공사 공문 제출요구에 “안보·영업기밀” 부실 답변만
- 4만명 몰린 대학축제서 술 먹고 춤춘 전북경찰청장 ‘구설’
- 심수봉 “박정희 대통령 당하는 것 목격, 제정신 아니었다”
- 1630마리 중 990마리 돌아오지 않았다...30대 직장인이 밝힌 진실
- [속보] ‘액트지오’ 아브레우 고문 “우드사이드, 조기 철수로 탐사자료 심층분석 못해”
- [에디터의창]출생률 제고를 위한 성욕과 교미의 정치경제학
- 유명 가수 집 직접 찾아간 경찰관…알고 보니 개인정보 무단 조회
- 개혁신당이 ‘김정숙 특검법’ 내는 국힘에 “쌩쑈”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 성일종 “윤 대통령 지지율? 인기 없는 엄격한 아버지 모습이라 그래”
- [단독] 세계유산 병산서원 인근서 버젓이 자라는 대마…‘최대 산지’ 안동서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