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해적도 누른 코로나

안호기 논설위원 2021. 8.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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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1월 경남 거제도 앞 해상에서 해군 청해부대 대원들이 해적에게 선박이 피랍된 가상의 상황을 가정해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해적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낭만적인 인물들과는 딴판이다. “진짜 해적들은 신의도 법도 모르는 악당이다. 그들은 반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남의 손을 자를 수 있고, 강간과 약탈에 혈안이 되며….”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묘사한 해적이 현실적이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은 폭풍보다 해적이 더 두렵다. 기상상황은 예측이 가능해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더를 장착한 쾌속선을 탄 해적이 언제 어디서 중기관총과 로켓포를 들이밀지는 알 수 없다.

해양수산부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해적 사건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 감소한 68건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적 사건도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각국이 군함을 파견해 자구노력을 펼친 영향도 있다. 그런데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인근 해역에서 해적은 줄었는데,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발생하는 선박·선원 납치 사건은 별로 줄지 않았다. 상반기 피랍 선원 50명은 모두 서아프리카 기니만 해역에서 해적의 손에 떨어졌다.

아시아 싱가포르 해협과 아메리카 카리브해 주변 해적은 단순 강도가 대부분이어서 좀도둑에 가깝다. 반면 아프리카 해역을 주무대로 하는 해적은 보다 조직화한 범죄단체와 유사하다. 선박과 선원을 납치해 선사나 국가에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납치 대상 선정, 해적질 감행, 협상 담당 등이 나뉜 해적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말리아 해적은 대부분 평범한 어민 출신이다. 선진국 어선이 대거 아프리카로 몰려와 물고기를 쓸어가고 폐기물을 무단투기했다. 바다가 황폐화해 삶의 터전을 잃은 소말리아 어민은 해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어·새우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한 기니만 연안은 한때 어업 관련 일자리가 고용의 25%를 차지했다. 그러나 선진국 원양어선이 남획을 일삼으면서 현지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겼다. 결국 해적은 어업의 글로벌화가 초래한 셈이다. 코로나가 일시적으로 해적을 누를 수는 있지만, 선진국들의 책임 등 근원적 요인을 무시하는 한 해적 문제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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