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다 나은 인간은 없다

한겨레 2021. 8. 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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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전하는 오래된 진실

[왜냐면] 한승은 | 독립연구자

천산갑과 게잡이원숭이의 공통점이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첫째,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둘째,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연결된다. 천산갑은 숙주로, 게잡이원숭이는 해결사로, 인간이 이 미생물의 돌기를 길게 잡아당겨 만든 촉수에 붙잡혀 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을 짓고,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기도 하고, 이것의 발생 원인을 찾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주체는 모두 인간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렇게 호명되는 순간 타자가 된다. 호흡기를 통해 인간과 한몸이 되기도 하는데 타자화되는 아이러니는 이 바이러스의 원인을 묻는 인간의 위치에서도 발견된다. 원인은 인간이 자연을 타자화한 데 있는데, 팬데믹이라는 결과를 종식하겠다며 내놓는 대책 역시 인간의 자연 타자화에 있다. 인간이 자연에 맞서는 이분법의 경계선에서 인간의 볼모가 된 동물은 수없이 많다.

전 임상 단계의 영장류 실험을 필수 항목으로 규정한 ‘세계보건기구’와 값비싼 영장류 실험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선진국’의 백신·치료제 개발 경쟁은 ‘세계 질서’라는 실세이자 대세가 규정하는 선(good)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새삼 일깨운다. 인간의 자연 파괴를 정당화한 세계 질서는 이제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인류의 적을 퇴치하기 위해 신약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의 힘을 과시하며 그 질서의 안전을 도모한다. 백신을 최선의 탈출구라고 선전하는 국제기구와 정부와 언론에 세뇌된 대중은 “코로나-”로 시작하는 모든 불편과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이기지 못한다. 인간으로 호명되는 우리 모두의 욕망이 우리 모두의 욕구를 담보로 벌인 온갖 사업의 결과가 이 시국이다. 지금 갈망하는 자유는 지난날 마음껏 행사한 욕망의 업보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나선 국내 기업들이 국가영장류센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영장류 실험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는 누군가에게 기꺼운 낭보인 한편 다른 누군가에겐 암담한 비보다. 영장류 모델을 확보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역량을 갖췄음을 방증한다며 뿌듯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인간과 신체적·정신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인간의 생존과 건강을 위해 비인간영장류를 착취하는 것이 선진국의 역량이냐고 묻고 싶은 이들도 있다. 2차 접종까지 마치고도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인구가 적지 않은 까닭을 더 강력하고 정교한 백신 개발의 의지로 승화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백신을 과신해선 안 될뿐더러 인간중심적인 대처법의 한계를 일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 자신이 세운 기업이 개발한 로켓을 타고 우주비행에 성공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동물로서의 인간은 97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은 1만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며 ‘동물 이상의 인간’이 동물보다 더 소비하는 에너지를 감당할 여력이 남지 않은 지구 밖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는 포부를 밝혔다. 지구상의 문제를 지구 밖에서 해결하면 된다는 그의 철석같은 믿음은 과거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선 제국주의 열강의 야욕과 그 야욕이 수반하는 폭력을 상기시킨다. ‘만물의 영장다운’ 인종이 ‘짐승 같은’ 인종을 지배하는 논리의 근거 없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동물 이상의 인간이 동물보다 더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폭력의 논리 역시 그 근거를 모른다. 혹자는 신에 호소할지 모르나, 인간만을 위한 신은 있을 리 없다. 슬프게도, 지금 많은 인간이 믿고 싶어 하는 백신의 힘이 그런 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힘이 실려 마음이 무거워진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의 방역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한다면, 그 생각에 인간도 동물이라는, 인간의 눈에 비친 동물과 동물의 눈에 비친 인간은 대등하다는 자명한 사실이 빠져서는 안 된다. 동물이 인간의 볼모가 된다는 말의 진상은 인간이 인간의 볼모가 되는 국면으로 치닫는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차치하고 코로나와 함께 자멸하는 인류세의 말로가 두렵다면, 인간이 동물 이상의 존재라는 근본 없는 믿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동물보다 나은 인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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