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 흔든 메타버스.."차세대 혁신이냐, 투자용 유행어냐"
[편집자주] 메타버스가 국내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메타버스 펀드로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곧 ETF(상장지수펀드)도 출시된다. 맥스트 등 메타버스 관련주가 급등하고 메타버스 기업들이 상장을 서두르고 있다. 과열현상이 나타나자 메타버스 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 지적이 나온다. 메타버스 투자의 현실을 짚어본다.
차세대 혁신이냐, 투자자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유행어(buzzword)냐. 메타버스가 증시를 달군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메타버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적잖게 갈린다. 미국 로블록스, 네이버의 제페토 등 메타버스 플랫폼이 Z세대(95년 이후 출생자)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반면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는 것도 또다른 현실이다. .
지난해 10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가 GPU(그래픽처리장치) 기술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목소리를 높인 뒤 메타버스는 주요 흐름이 됐다.
메타버스 대표 기업인 유니티소프트웨어(이하 유니티)가 막 상장하고 로블록스가 IPO(기업공개) 준비를 하던 시점이었다.
유니티는 포켓몬고, 어몽어스 등에 게임엔진을 공급한 회사다. 전세계 상위 1000개 모바일 게임 중 71%가 유니티로 제작한 게임이다.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프로그램에 특화돼 있어 볼보 등 완성차 기업들은 유니티의 엔진을 활용해 가상 시뮬레이터로 자율주행 AI(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기도 한다.
로블록스는 일종의 무료 온라인 게임 플랫폼이다. 이용자들은 로블록스를 통해 게임을 창작할 수도,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게임 뿐만 아니라 콘서트나 생일파티를 열기도 한다. 전세계 로블록스 가입자 수는 2억명을 돌파하며 넷플릭스 구독자 수와 비슷한 상황이다.
두 기업은 미국 증시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이폰(2007년 첫 출시)보다 오래된, 생각보다 연혁있는 회사들이다. 유니티는 2004년에 설립됐고 로블록스는 2006년에 출시됐다. 메타버스라는 말의 탄생은 1992년까지 거슬러간다. 미국의 SF 작가 닐 스티븐슨이 쓴 소설 '스노크래시'에 처음 등장했다. 초월이라는 의미의 메타, 세계라는 의미의 유니버스가 합쳐진 말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가 '역주행'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일상의 온라인화' 영향이 크다. 랜선 회식, 랜선 미팅, 랜선 OT(신입생환영회) 등 세계인의 일상이 온라인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온라인 속의 내'가 현실의 나만큼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온라인 속에서 보내게 된 Z세대에게 메타버스는 어쩌면 학교보다 더 친숙한 공간이다. 미국의 16세 미만 청소년의 55%가 로블록스에 가입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이용자들이 로블록스에 머문 시간은 총 306억시간에 달한다.
네이버의 3D 아바타 기반 소셜 플랫폼 '제페토'도 지난 2월 기준 가입자 수가 2억명을 돌파했다. 해외 이용자 비중이 90%이고 10대 비중이 80%에 육박한다. Z세대가 앞으로 어떤 소비 성향을 보일지가 미래에 '돈을 버는' 기업을 좌우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지난 5월 상장 후 첫 실적 발표에서 예상보다 큰 적자를 발표했다. 로블록스는 1분기 매출액이 3억87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0% 늘어났지만 주당 46센트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주당 21센트)를 크게 밑도는 수치였다.
유니티도 지난 2월 지난해 4분기 주당 조정손실이 10센트라고 발표했다. 매출은 2억203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9% 늘었다. 두 기업 모두 자사의 플랫폼·엔진을 활용한 게임이 흥행하더라도 기업보다 개발자에게 가는 이익 비율이 크기 때문이다.
주가도 요동쳤다. 유니티 주가는 지난해 9월 상장 이후 60달러대에서 당해 12월 172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현재 100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로블록스도 올해 3월 첫 상장일에 69.5달러를 기록한 뒤 지난 6월 99.86달러까지 오르며 100달러에 육박했지만 현재 77달러 수준으로 내려왔다.
정은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신산업 특성상 메타버스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 선제 확보를 위해 출혈 경쟁에 매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주가가 출렁이는 이유 또한 "산업 성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메타버스 기업들이 단순한 기술 플랫폼이나 기존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을 뛰어넘어 진실로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뉴욕타임즈는 "로블록스는 십대 게임 제작자를 백만장자로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들은 로블록스를 메타버스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메타버스가 공상과학 속의 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미국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콘서트를 열고 제페토에서 구찌를 사기 위해 10대들이 앞다퉈 계정을 만드는 일들은 분명한 현실이다.
전세계 금융시장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 6월30일 전세계에서 첫 상장된 메타버스 ETF(상장지수펀드)인 '라운드힐 볼 메타버스 ETF'에는 3900만달러(약 437억원)이 몰렸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KB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이 나란히 '메타버스' 펀드를 출시한 데 이어 NH-아문디, 신한자산운용도 관련 펀드를 준비 중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메타버스 ETF를 준비하고 있다.
증시전문가들은 메타버스는 플랫폼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고 긴 호흡으로 봐야하는 만큼 영역별로 고른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인프라(5G, 6G,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등) △하드웨어(VR HMD, AR 글래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소프트웨어·컨텐츠(개발 엔진, 인공지능, 디지털 트윈 등) △플랫폼(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등)이다.
차동호 KB자산운용 ETF(상장지수펀드)운용실 실장은 "AR, VR 기술은 20년 전부터 나왔지만 빠른 송신(5G)과 빅데이터를 다루는 클라우드 등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이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며 메타버스는 다양한 IT 기술들의 집합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마트폰처럼 소비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하드웨어도 필요한데 삼성 기어VR이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이 큰 히트를 치지 못했다"며 "페이스북의 오큘러스2가 빠른 속도로 보급될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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