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한끼]떡볶이에 탄산 마시던 우리, 어느새 서로의 운동을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오전 11시 45분. 회사 동기 A와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먹었다.
“피티는 어때?”
“달리기는?”
진동벨을 받아들고 식탁에 앉자마자 서로의 운동에 대해 묻다니.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평소 같이 밥을 먹으면 열에 여덟 번은 떡볶이를 먹으며 얼음 컵에 탄산을 곁들이던 우리인데 말이다. ‘건강식’을 먹기로 합의하고 고른 메뉴는 회사 근처 한 카페에서 파는 그린커리다.
코로나 때문에 몇 달을 못 본 새 우리는 꽤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맛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몸에도 좋은 음식을 찾아 먹으려 노력한다. 안부를 물을 때는 요즘 무슨 운동을 하는지를 묻는다. 살 빼기나 다이어트 말고 그냥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어느새 운동하는 일상을 즐겁게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요새 무슨 운동을 하는지, 그 운동은 얼마나 재밌는지가 계속 궁금하다. 운동이 자연스레 대화의 소재가 된 게 아직도 가끔 생경하다.
아무래도 이건 달리기의 효과다. 3월 중순부터 달리기 시작했으니 넉 달 하고 보름 정도를 달리면서 운동이 일상이 됐다. 5분, 10분 쉬지 않고 달리는 시간이 50분까지 늘어나는 동안 나는 어느새 ‘운동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숨이 차오르고 땀을 흠뻑 흘리는 재미를 알아버린 나는 그전의 나와 확실하게 달라졌다. 땀 흘리는 즐거움을 알게 된 이후, 먹는 걸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윙’ 진동벨이 울리고 제철 가지와 토마토, 양파가 들어간 그린커리가 나왔다. 곁들인 수박 주스부터 시원하게 들이켰다. “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건 정말 태국 맛이야!” “단백질은 어떻게 채워야 하지? 회사에 다니면서 식사로 단백질을 채우는 건 너무 어려워.” 이제는 밥을 먹으면서 영양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이전에는 까탈스럽다고 생각했을 일이다. ‘꾸준히 운동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도 예전과 다르게 되새기게 된다.
삼십 대가 된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땡!’하고 체력이 눈에 띄게 주는 건 아닐 텐데, 서른 줄에 접어든 또래들이 부쩍 건강한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게 느껴진다. 역시 이전에는 유난스럽다고 여겼겠지만, 지금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건강한 습관을 지키려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 든든하다.
“오늘은 늦어도 한 시에 잘래.” A가 말했다. 운동 이야기가 자연스레 수면시간까지 이어진 것이다. “나는 열두 시! 그럼 내가 밤에 카톡 해 줄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유튜브의 알고리즘에서 헤엄치지 말자고, 일찍(?) 잘 것을 서로 다짐하고 헤어졌다.
오후 11시45분. A에게 카톡을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난 십오분 뒤에 잘 거야. 너에겐 한 시간 십오분이 남았지. 오늘도 고생했어. 안녕!’
다음날 오전 6시 20분. ‘OOO님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달릴까 말까 고민하는데 달리기 어플이 친구 B의 운동 시작을 알려왔다. ‘응원’ 버튼을 눌러 B에게 ‘랜선 박수’를 보내고 나도 러닝화 끈을 묶었다. 찌뿌드드한 몸을 풀고 6.34km를 달렸다. 서로를 응원하는 삶, 정말 짜릿해!
연희동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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