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해제냐, 고난의 행군이냐..이란 새 대통령 라이시의 앞길

김윤나영 기자 2021. 8. 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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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제재 해제 모색하지만, 외국에 안 휘둘릴 것"

[경향신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신임 대통령(오른쪽)이 3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최고지도자 집무실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왼쪽)로부터 대통령 임명장을 받고 있다. 테헤란|EPA연합뉴스


대미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신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서방국가들의 대이란 제재 해제를 과제로 꼽으면서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협상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제재로 파탄 난 이란 경제의 회복이다.

■미국 제재받은 최초의 이란 대통령

검정 터번을 두르고 다니는 라이시 대통령은 금수저 가문 출신의 보수적 이슬람 성직자다. 하메네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손들로 인정받는 세예드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란에서는 세예드 가문만 검정 터번을 두를 수 있다. 검정 터번을 쓰는 것 자체가 특권이자 존경의 상징이다.

라이시 대통령은 공안 검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법무장관, 대법원장을 두루 거쳤다. 1988년 반체제 인사 5000명의 처형을 주도한 일명 ‘사망위원회’에서 활동해 ‘테헤란의 도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정치범 처형 혐의로 2019년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2017년 대선에서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지난 6월 대선에 재출마해 62%의 지지로 당선됐다. 그는 미국의 제재를 받는 최초의 이란 대통령이 됐다. 대미 강경파인 그는 하메네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는 대선 기간엔 대미 온건파인 로하니 정권의 경제 실정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사실을 거론하며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62%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지만 취임 전부터 정당성 논란에 휩싸였다. 대선후보 자격을 심사하는 이란헌법수호위원회가 온건파 후보들의 대선 출마 자격을 대거 박탈했기 때문이다. 강경파 라이시를 지지하려는 하메네이의 의중이 후보 심사 결과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젊은 유권자 사이에선 대선 보이콧 운동이 일었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48.8%로 1979년 민주화 혁명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이후 역대 이란 대선 중 가장 낮았다.

하메네이는 투표를 거듭 독려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메네이는 이날 대통령 임명장을 건네주면서 “적들이 선거를 보이콧하려는 음모를 계획한 것을 고려할 때 투표율이 좋다”고 라이시 대통령을 두둔했다.

■최우선 과제는 경제 살리기

4년 임기를 시작하는 라이시 대통령 앞에는 가시밭길이 놓였다. 불공정 대선 논란을 딛고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면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막대한 재정적자 등 경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해결해야 한다. 미국의 제재로 금융과 석유 거래가 끊기면서 2018년 이란의 경제 성장률은 -6%대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엔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치면서 물가상승률은 40%를 넘었다. 청년 실업률은 16.7%, 재정적자 규모는 3000조리알(13조7200억원)에 달한다.

라이시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절반으로 낮추고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 그가 전임 로하니 정권의 뒤를 이어 JCPOA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그러나 그는 JCPOA 협상에만 전적으로 올인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미국 정권이 바뀌면 합의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대미 강경파의 입장도 협상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취임 일성으로 “우리는 억압적인 제재를 해제하려 노력하겠지만, 이란 경제 상황을 외국 세력의 의지에 묶어두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처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또 “우리 정부의 외교 정책은 JCPOA에서 시작하지도, JCPOA에 국한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매체들은 일단 오는 5일 라이시 대통령 공식 취임식에 JCPOA 당사국 회의 의장을 맡은 엔리케 모라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사무부총장이 참석하는 사실에 주목한다. 취임식을 계기로 JCPOA 협상이 재개될 수도 있다. 협상 전망은 엇갈린다. 미국 측 협상 대표인 로버트 말리 이란 주재 미국 특사는 “다음 회의에서 이란이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고 돌아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협상에 참여한 독일 고위 관리는 “몇 가지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CNBC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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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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