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카카오뱅크 '셀리포트' 논란

임정수 입력 2021. 8. 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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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IPO)을 목전에 둔 카카오뱅크 매도보고서(셀리포트)가 자본시장 이슈꺼리로 떠올랐다. BNK투자증권이 발표한 청약 자제 권고 보고서다. 비이자이익이 없는(신용대출 이자 이익만 있는) 인터넷은행의 상장 공모가가 수익원이 다양한 금융지주사보다 높게 평가되는 상황을 시장이 계속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청약을 자제하라는 내용이 핵심 골자다. 은행들이 현금유동성 수급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공모주 청약 열기가 과열된 상황에서 전문가 관점에서 상장 후 주가 하락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섞인 경고음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BNK투자증권은 해당 보고서를 플랫폼에서 삭제해 논란이 배가 됐다. 이해 관계자들의 직·간접적인 압박에 못 이겨 보고서를 내렸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BNK투자증권이 보고서를 삭제한 이유에 대한 입장을 내지 않으면서 이런 추정은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다.

다양한 시장 의견 중 하나일 뿐인 셀리포트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만큼 국내 자본시장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기가 어려운 환경에 있다는 방증이어서 쓴맛을 다시게 한다. 증권가에서는 보고서를 안 내는 것도 의견인데 굳이 셀리포트를 내서 비난과 불이익을 감내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도 팽배한 듯 보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셀리포트와 유사한 신용평가사들의 기업 신용등급 하향 조정도 시장 이해관계자들의 상당한 저항을 받는다. 과거에는 신용등급 하락을 받아들여야 하는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허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저항은 주가나 신용등급 하락을 받아들여야 하는 기업만 하지 않는다. 연기금, 공제회, 자산운용사 등의 기관투자자들도 해당 기업 투자 포지션을 보유하는 순간 모두 이해 관계자로 돌변한다. 기업이나 큰손 투자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증권사들은 ‘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관계 속에서 같이 오래 가야 하는데 셀리포트는 불편함을 넘어 비즈니스에서의 불이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과거 한화증권 대표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다가 경질 등의 불이익을 당한 것은 비근한 예다. 이 사건은 국정감사에까지 등장하면서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비화하기도 했다. 셀리포트에 대한 ‘보이는 손’이 작용한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표면화된 사건이다. 요즘은 ‘동학농민’을 자처하는 개인 투자자들까지 집단으로 주도면밀하게 증권사에 압력을 넣는다고 하니 셀리포트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악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역설적으로 셀리포트를 내기 어려운 환경은 오히려 셀리포트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해 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특정 기업에 대한 시장의 다양한 의견 중 하나일 뿐이어야 하지만, 모두가 ‘예’하는 다양성이 없는 의견 일색 속에서 ‘아니오’라고 답변하는 용기의 상징이 된 때문이다. 험난한 저항을 뚫고 불이익을 감내하면서까지 보고서를 써낸다는 것이 진정성의 상징은 된 것은 아닌지. 이 또한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자발적으로 셀리포트를 활발하게 발표하는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금융당국이나 한국거래소(KRX)가 나서서 시장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도록 제도적으로 유도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주식 투자 열기가 뜨거운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가격(주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논쟁이 활발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특히 아직 제대로 시장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상장 전 단계의 공모주 시장에서는 가격발견 기능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의견 개진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투명하고 자유롭게 정보 유통이 이뤄지지 않는 시장은 판매자와 소비자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소비자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중고차 시장(Lemon Market)과 같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경고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임정수 기업분석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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