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선수 망명 신청할 수밖에..반체제 인사 숨진 채 발견
"지속적으로 추적·위협 당해..의문의 상흔도 발견"
루카셴코 정권 야권 탄압 지속..UN "철저한 수사 촉구"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키예프 경찰은 “전날 실종됐던 비탈리 시쇼프가 자택 근처 공원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시쇼프가 자살을 한 것으로 위장된 것으로 보고 살인 사건 혐의 조사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시쇼프는 키예프의 사회운동단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하우스’ 대표로, 벨라루스 정부 탄압을 피해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벨라루스인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일자리, 법률 서비스를 지원해왔다. 시쇼프는 전날 오전 9시 집 근처에서 조깅을 나갔다가 실종됐다.
이호르 클리멘코 우크라이나 경찰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시쇼프가 발견됐을 때 얼굴에 멍이 들고, 코, 왼쪽 무릎에 찰과상이 있었으며 가슴 쪽에 경미한 부상 등 의문의 상흔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피습을 단정하기에는 아직 성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통신사 우크린폼은 “전문가들은 (시쇼프의 부상이) 높은 곳에서 낙하했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부상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쇼프의 지인들은 그가 극단을 택할 아무런 동기가 없으며, 그의 신변이 계속 불안했다는 점을 들어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KGB)로부터의 타살 가능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벨라루스 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KGB를 통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외국 거주 야권 지도자들을 체포하기 위한 대규모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벨라루스 하우스 측은 “이것은 벨라루스 KGB가 현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계획한 작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시쇼프의 가까운 동료인 유리 슈추츠코도 우크라이나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쇼프의 시신을 확인했을 때) 코가 부러져 있었다”면서 “나는 이것이 벨라루스 KGB의 소행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우리를 체포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벨라루스 야권 정치인 프라낙 비아코르카도 이날 FT와의 인터뷰에서 “시쇼프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이라며 “(시쇼프를 비롯해) 벨라루스 하우스 측 사람들은 추적·위협 당할 위험에 항상 노출돼있다고 호소하곤 했다”고 말했다.
벨라루스는 현재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해 8월에 재선에 성공해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며 26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재선 이후 ‘부정 선거’ 논란으로 전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개월간 이어지면서 3만5000명 가량이 체포되고 15만명 이상이 이웃나라인 우크라이나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반정부시위 참석이나 야당지지를 표명한 유명 운동선수들이 투옥되기도 했다.
지난 2일 도쿄올림픽에 참가했던 벨라루스 육상선수 크리스티나 치마노우스카야(24)는 올림픽 도중 선수촌에서 끌려 나와 강제 귀국 위기에 처했다가 폴란드로 망명 신청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는 벨라루스 대선 이후 야권의 대규모 부정선거 항의 시위로 정국 혼란이 계속되던 당시, 재선거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공개 성명에 참여한 바 있다.
국외 망명 중인 벨라루스 야권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이날 트위터에 “벨라루스를 탈출한 사람들이 여전히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걱정된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유엔(UN)인권최고대표 사무소는 “(벨라루스의) 상황은 분명히 악화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당국에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한편, 루카셴코 정부 측은 시쇼프의 사망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성채윤 (chaecha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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