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후안무치! [편집실에서]

2021. 8. 4. 09: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어디에 산다고 말해야 할 때 이미 쭈뼛쭈뼛해지는 것도 나의 못 말릴 소심증이다. 지난 일년 사이에 몇 곱절이나 값이 뛴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불로소득한 액수까지 계산하면 내가 속한 사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박완서 선생이 1989년 5월 한겨레신문의 ‘한겨레 논단’에 기고한 글입니다. 서울올림픽이 끝난 다음해에도 집값과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전셋집에서 내쫓긴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때입니다. 박완서 선생은 미친 집값이 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염치’라고 생각했겠지요.

서울과 부산에 4채의 집을 갖고 있는 김현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내 집 마련이 쉬웠고, 주택가격이 올라 자산도 늘어나는 일종의 ‘시대적 특혜’를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그 시절을 산 사람 누구나 4채 정도는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1969년생인 김 후보자 또래 모두가 ‘시대적 특혜’를 입은 것은 아닙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2020년 서울시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와 ‘2021년 경기도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수도권에만 22만7000가구의 아이들이 땅 아래에, 무허가 주택에, 방 한칸에, 컨테이너에, 모텔에, 교회에 삽니다. 부식된 벽에서는 바퀴벌레가 수시로 나오고 눅눅한 곰팡이로 뒤덮인 그런 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들의 부모는 김 후보자처럼 민간건설업체들이 출연한 연구원에서 21년을 근무한 분들이 아닐 겁니다.

정부여당은 ‘내로남불’적 태도로 많은 질타를 받았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정작 2주택 이상인 고위관료가 적지 않았습니다. 잣대는 엄격했습니다. 도쿄특파원 시절 샀던 도쿄의 집도, 배우자가 집필을 하기 위해 산 교외의 집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머리 숙여 사과하고, 사퇴해도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 분노는 야당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습니다. 정권 교체도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만약 지금의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부동산 보유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 나갈까요. 재산공개 등을 보면 위태위태한 분들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요. 김 후보자는 지난달까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김 후보자를 지명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정비창에 공공임대주택 1만가구를 공급하는 방안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은 땅밑에서 사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보루입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분명 실패입니다. 그런데 그 대안세력을 보니 걱정이 앞섭니다. 설마 ‘내로남불’의 시대가 가고 ‘후안무치’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 더는 듣기 싫습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