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미훈련 중단하면 상응조치' 현실성 있나?

노민호 기자 2021. 8. 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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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어 국정원까지 "유연한 대응 필요" 제안
"훈련 중단해도 남북관계 발전 보장 없어" 반론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2021.8.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통일부에 이어 국가정보원까지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이달 실시 문제와 관련해 "유연한 대응"을 언급하며 사실상 연기 또는 취소 필요성을 제안하고 나섰다.

국정원은 "한미훈련을 중단할 경우 북한이 향후 남북관계에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전문가들로부턴 이 같은 국정원의 판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감지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 따르면 박지원 국정원장 3일 열린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한미훈련 중단'을 요구한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최근 담화와 관련해 "훈련의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란 큰 그림을 위해선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원장은 특히 북한이 미국에 했던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약속을 지난 3년간 지켜온 사실을 거론, 북한은 "미국이 그 '상응조치'를 해주지 않았다는 불만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며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까지 거론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 측이 한미훈련과 관련해 '유연한 대응'에 나설 경우 북한이 어떤 '상응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지난 2018년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성됐던 '한반도 평화무드'는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간의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사실상 소멸됐다.

북한은 '대화 중재자'를 자임했던 우리 정부에 그 책임을 돌렸고, 남북관계도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 속에 북한은 국경마저 걸어 잠그고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 와중에 북한은 우리 측 탈북민 단체가 김 총비서를 비난하는 내용의 대북전단을 살포한 사실을 문제 삼아 작년 6월 남북한 당국 간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한 데 이어, 개성 소재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까지 했다.

올 '4·27 판문점선언'에 즈음해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이 이뤄진 탓인지 이후 북한의 대남 비난 수위가 다소 낮아지고 지난달엔 통신선도 재개통됐지만, 북한은 여전히 우리 국민 혈세로 지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대해 사과 한 마디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1년이 된 지난 6월16일 경기도 파주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개성공단 지원센터가 뼈대를 드러낸 채 방치돼 있다. 2021.6.16/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오히려 북한 김 부부장은 남북 통신선 복원은 "단절됐던 걸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해 놓은 것뿐 그 이상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면서 공개적으로 한미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김 부부장 담화에 앞서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한미훈련 연기"를 제안하고, 국정원도 이날 그와 유사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남북 통신선 복원 과정에서 모종의 물밑 협의가 진행됐던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설령 한미훈련 연기 또는 중단에 대한 '상응조치'를 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불거질 남남갈등이나 한미관계 훼손을 상쇄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따른 북한의 상응조치는 남북관계를 지난 2018년 당시로 되돌리는 걸 의미할 수 있다"면서도 북한으로부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얘긴 듣지 못했을 것으로 봤다.

만일 북한과의 사전 협의과정에서 한미훈련 문제가 다뤄졌다면 통신선 복구와 함께 관련 조치가 속도감 있게 전개됐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또한 "북한이 구체적인 '상응조치'를 약속했다고 볼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특히 "한미훈련은 향후 북한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면 다뤄질 수 있을지 몰라도 현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등가성'에도 맞지 않는다"며 "한미 간 갈등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마치 '한미훈련이 남북한 간의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 자체가 문제란 지적도 함께 내놓고 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의 주장처럼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게 아닌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연습"이라며 "북한이 이를 두고 시비를 걸 땐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 하니까 북한이 이 문제를 계속 파고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김 부부장 담화는 한미훈련이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며 "훈련을 중단하더라도 남북관계가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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