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현대차의 반전, 4년 동안 무슨 일이[광화문]
"차는 좋은데 사지를 않으니..."
2017년 여름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당시 한국 교민사회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현대차 였다. 전,후방 산업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큰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현대차 중국법인(북경현대)의 실적 부진은 그대로 교민사회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당시 현대차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중 관계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뒤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중국 서민과 중산층들은 값이 싼 토종차를 선호했고, 부자들은 폭스바겐, 토요타, GM 등 유럽, 일본, 미국의 이름만 대면 알만한 브랜드를 찾았다. 제품 경쟁력만 놓고 보면 여타 해외 브랜드에 뒤질 게 없다지만 소용이 없었다.
또 한가지 현대차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 건 노조 문제였다. 브랜드를 중시하는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선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하루라도 빨리 들여와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일감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강성 노조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조합을 설립한 이후 2018년까지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년 파업을 벌일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2017년엔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이듬해 1월 임단협이 타결됐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24차례 걸쳐 파업을 진행했고, 파업에 따른 추정손실만 2조 원에 육박했다.
그로부터 4년. 현대차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중국 시장에선 여전히 고전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2로 불리는 미국, 유럽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 유럽에서 전년 동기 대비 40.1% 증가한 49만4158대를 판매했다. 유럽 전체 자동차 판매실적(648만6351대)이 같은 기간 27.1% 증가한 것보다도 훨씬 좋은 성과다. 현대차·기아의 유럽 시장 점유율도 같은 기간 0.7% 포인트 높아진 7.6%를 기록했다.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제네시스 포함)·기아의 올 상반기 판매량은 80만4944대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8.1% 증가했다. 상반기 역대 최대 판매량인 2016년(70만2387대)과 비교해도 약 15% 늘었다. 매달 월간 최대 판매량을 경신하고 있는 제네시스는 이미 지난해 상반기 대비 155.9% 늘어난 1만9298대를 팔았다. 미국 유럽에서의 선전은 중국 시장 공략의 교두보다. 폭스바겐 GM 만큼 유명한 브랜드를 중국 소비자들이 마다할 리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수소차 외에 전기차 시장에서도 아이오닉5(현대차), EV6(기아)가 호평받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제시한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전략에 대한 기대도 높다. 지난해 3월 6만5000원에서 1년4개월여만에 22만원(8월2일 종기 기준)으로 238% 뛴 주가가 이를 대변한다.
더 반가운 것은 노조의 변화다. 2018년까지 거의 매년 빠지지 않았던 현대차 파업이 3년 째 자취를 감췄다. 올해는 지난해 연봉 동결과 전동화 전략 진행에 따른 고용 안정 이슈가 대두되면서 파업을 피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우려 속에서도 현대차 노사는 무분규 기록을 이어갔다. 노조는 정년 연장 요구를 거둬들였고, 사측은 적극적인 임금 보상으로 화답했다. '산업전환 대응 관련 미래 특별협약'도 체결했다.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 유지를 위한 큰 틀의 약속이다.
현재의 노사 안정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특약은 중장기적인 방향에 대한 합의일 뿐 사안마다 구체적인 협상과 타협이 불가피하다. 합리·실리 성향인 현 노조 집행부가 바뀌면 다시 대립과 분규의 흑역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여기는 MZ세대 직원과 연구직, 사무직 노조도 변수다.
그럼에도 노사 화합, 기업 경쟁력 강화, 합당한 보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다시 확인한 올해 임단협은 의미가 크다. 앞으로 전개될 전기차·수소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를 중심으로 한 산업 대변혁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최근의 현대차 경쟁력은 지난 3년간의 노사 화합이 토대가 됐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한국GM, 르노삼성 등 아직 임단협을 타결짓지 못한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하루빨리 현대차가 보여준 '윈윈' 대열에 올라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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