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치매 할머니.. 간호사는 치료 위해 화투 들었다
병실 바닥에 깐 매트리스 위에서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가 고심하듯 화투 패를 내려다보고 있다. 전신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마주 앉아 그런 할머니를 바라본다.
지난 1일 한 장의 사진이 온라인을 달궜다. 코로나 병동에 홀로 격리된 치매 할머니 환자를 위해 간호사가 화투 패를 갖고 그림 맞추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로 지친 많은 이의 마음을 위로한 이 사진은 지난해 8월 1일 삼육서울병원 음압 격리병동에서 촬영된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는 3일 “고령에 치매인 할머니가 코로나 격리 병실에서 힘들어하자 간호사들이 화투를 이용한 꽃 그림 맞추기와 색연필 색칠하기로 그림 치료에 나선 것”이라며 “이 사진은 올해 협회가 공모한 ‘간호사 현장 수기·사진전’에 출품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당시 병동의 간호사들은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위해 먼저 그림 치료를 제안했다고 한다.
사진에 등장하는 박모(93)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머물던 중 코로나에 걸렸고, 코로나 전담 병원인 삼육서울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할머니는 고열로 기운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중증 치매 상태여서, 다른 입원환자들에 비해 유독 격리병실 생활을 답답해하고 힘들어했다. 사진 속 방호복의 주인공인 이수련(29) 간호사는 “격리병상에서 환자가 말을 나눌 사람은 간호사밖에 없지 않으냐”며 “계속 졸기만 하는 할머니를 깨우고 달래 기운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 없을지 궁리했다”고 했다. 사진 속 화투 놀이 아이디어는 동료 양소연(33) 간호사가 냈다. 재활치료 간호 경험이 있던 양 간호사는 “치매에 보호자도 없이 홀로 병실에 계시는 게 너무 위험해 보여 입원 이튿날부터 놀이 시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림 치료도 했다. 할머니는 그림 그리는 내내 졸기도 했지만 코로나 병동에 배치된 간호사 10명이 돌아가면서 그림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또 간호사들은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걸어주고, 가족들은 “곧 퇴원하니 기운 차리고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할머니를 위로했다. 모두의 노력으로 박 할머니는 입원 후 보름 만에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치매 환자의 식사 챙기기부터 기저귀 갈아주기까지 그냥 돌보기에도 힘든 일을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방호복을 입고 해내야 했다. 7년 차 간호사인 이씨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잘 치료받고 퇴원하도록 돌봐주는 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작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면서 이 간호사를 힘들게 한 건 따로 있었다. 그는 “입원 환자 중 3명이 돌아가셨다”며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유리창 너머로 가족들과 이별하는 광경을 보면서 가장 가슴 아팠다”고 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은 1만건 넘게 리트윗(재게시)됐고,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로 퍼졌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2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글을 공유하며 “방호복을 입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고요히 할머니를 응시하는 의료진의 모습에 경외심을 느낀다”면서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돌봄’과 ‘연대’인 것 같다”고 썼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숨 쉬기 힘들고 땀이 비 오듯 하는데도 환자를 정성껏 위로하고 돌보는 광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호사의 모습”이라며 “코로나에 지친 모든 국민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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