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작년 섬진강 수해 1년 조사하고도 책임 못밝혀
작년 여름 섬진강·금강 등에서 벌어진 대규모 수해는 댐 운영과 하천 정비 미흡 등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주원인이었다는 민관 합동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환경부나 수자원공사, 국토교통부 등 물 관리를 담당한 정부 부처와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 소재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표 내용이 담겨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환경부는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해 8월 발생한 섬진강댐과 용담댐·대청댐, 합천댐·남강댐 하류에 대한 수해 원인 조사 결과와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조사 용역을 맡은 한국수자원학회 배덕효 회장은 “수해의 원인은 집중호우, 댐 운영 관리 및 관련 제도 미흡, 댐·하천 연계 홍수 관리 미비, 하천의 예방 투자 및 정비 부족 등 복합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8년부터 물 관리 업무를 국토교통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하면서 댐 준공 당시 지침과 매뉴얼을 그대로 쓰는 등 안이한 태도로 일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난리가 난 댐들은 농업용수 활용 등에 대비한다며 장마 기간에도 저수율을 80~90%로 높이는 무리한 운영을 하다가 폭우가 닥치자 2~3일 동안 방류량을 급격히 늘렸다. 그 결과 하류 지역 158곳이 침수돼 8356가구가 이재민이 됐고 3725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그런데도 민관 조사단은 ‘높은 댐 수위가 수해의 한 원인이 됐지만 규정대로 운영됐다’며 오락가락한 입장을 내놨다. 각 부처와 담당자들이 어떤 책임이 있는지 조사하지도 않은 채 “이상기후로 수백 년에 한 번 있을 폭우가 왔다”고도 했다.
조사 협의회에 참여한 박영기 전북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섬진강댐은 규정상 보조여수로(홍수 조절에 쓰이는 별도의 수문)를 활용하면 수위를 9m 정도 더 낮출 수 있었는데 홍수 초기 수위를 높게 가져간 것이 큰 잘못”이라며 “정부 실책을 감추려는 조사 결과”라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댐 운용은 농업용수 등 물 이용과 홍수 조절이라는 측면을 두루 고려해서 규정 내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주민 대표와 지자체 추천 전문가도 조사에 참여했다”고 했다. 환경부는 곧 최종 조사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책임 회피용 조사”라고 했다. 김창승 섬진강수해참사피해자 구례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주민과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사전 방류 미실시와 예비 방류의 부족, 홍수기 집중 방류 등 세 가지가 작년 수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지만, 환경부는 복합적인 요인을 내놓으며 주된 원인을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이날 홍정기 환경부 차관은 “환경분쟁조정법에 따라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하겠다”며 “홍수 피해 지역에 대한 재해 복구 사업은 내년 초까지 신속히 마무리하고 홍수 관리 대책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수자원학회 측도 “섬진강댐은 특단의 홍수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대대적인 하천·댐 정비에 나서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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