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23] 금메달보다 빛난 신사의 품격

김규나 소설가 2021. 8.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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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

신사의 존재는 외투의 맵시가 아니라 태도와 발언과 몸가짐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백작이 말했다. “신사라면 손님을 먼저 대접했을 겁니다. 신사라면 포크를 들고서 손짓을 하지는 않겠지요. 입에 음식을 문 채로 얘기하지도 않을 테고요. 신사라면 대화를 시작할 때 자기 자신부터 소개할 겁니다. 자신이 손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경우라면 특히 더 그렇지요.” -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 중에서

지난 7월 22일 도쿄올림픽 축구 1차전, 뉴질랜드와 벌인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0대1로 패배했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 골을 넣은 상대편 선수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을 때 우리 팀 선수는 거절했다. “진 게 너무 실망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했지만 입을 꽉 다문 채 화난 표정으로 눈길마저 외면한 것은 자랑스럽지 않은 매너였다.

반면 29일, 유도에서 은메달을 딴 조구함 선수는 준결승전에서 상대편 선수의 손에 쥐가 나자 풀리길 기다려주었고 아픈 손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이긴 뒤에는 진 선수를 위로해주었다. 결승전에서는 아쉽게 패했지만 승리한 일본 선수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축하해주었다. “제가 여태까지 잡아본 상대 중에서 가장 강했어요.”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볼셰비키 혁명 시절, 귀족이라는 이유로 한 호텔에 종신 연금된 백작의 이야기다. 그가 소유했던 모든 건 ‘인민의 것’이 되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총살이 결정된다. 평생을 그곳에 갇혀 살았지만 그는 언제나 존경받는 신사였다. 혁명 세력의 대령이 신사란 무엇이냐고 묻자 백작은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한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되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 말과 행동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고통스럽고 불행하다 느껴질 때 인격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이기적 행동, 경박한 말장난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조구함 선수가 보여준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한 스포츠맨 정신, 금메달보다 귀하고 우승보다 아름다운 신사의 품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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