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사이트] 기후회의 도시마다 아이슬란드 빙하 전시.. 사람들은 녹는 얼음에 입맞췄다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2021. 8.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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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너무 덥다 보니 한여름에도 꽁꽁 언 얼음을 볼 수 있다는 밀양 얼음골조차도 얼음이 모두 녹아 버렸다고 한다. 에어컨이 필요 없는 캐나다에서는 난데없는 폭염으로 수백 명이 숨졌다고 한다. 이 모두가 이상기온 때문인데, 이제 기후 위기는 뉴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키워드가 되었다.

예술도 기후 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브라질 작가 넬레 아제베두가 수백~수천 개 얼음으로 만든 사람 조각‘최소의 기념비’의 페루 리마 거리 설치 모습〈왼쪽 큰 사진〉. 햇볕에 녹으며 사라지는 얼음 인간들은 베를린, 피렌체 등에서도 전시됐다. 덴마크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아이스 워치’(오른쪽 위 첫째 사진)는 아이슬란드 바다에서 건져온 거대한 빙하 조각(오른쪽 위 둘째 사진)들을 유엔 기후정상회의가 열리는 런던 도심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전시한 작품이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피슐리와 바이스의‘눈사람’, 카더 아티아의‘스카이라인’. /ⓒneleazevedo, ⓒolafureliasson, 시카고 미술관, 카더 아티아 홈페이지

예술, 기후 위기를 주목하다

예술가 중에도 특히 기후 문제에 관심을 둔 작가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이다. 리움미술관에서도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한 작가다. 2014년 코펜하겐 유엔 기후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이 회의 개최지를 따라 파리와 런던 거리에 세워졌던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그의 작품이다. 아이슬란드 바닷가에서 한 때 ‘만년빙’이라 불리웠던 빙하를 낚시하듯 건져 올려 도시로 옮겨온 것이다. 작품 제목은 ‘아이스 워치(Ice Watch)’. 시민들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이 약 열흘 동안 서서히 녹으며 점점 작아지는 변화를 관찰하며 말로만 듣던 ‘지구 온난화’의 의미를 체감한다. 정보를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다.

넬레 아제베두(Néle Azevedo)의 ‘최소의 기념비(Minimum Monument)’도 흥미롭다. 작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사람 조각을 도심 한복판에 수백~수천 개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대부분의 얼음은 도심의 열기 속에서 30분 이내 사라져버린다. 이 역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 문제에 직면하게 될 우리의 미래를, 그 속에서 사라져버릴 생명의 가치를 제시하는 작품이다. 거리에 우람하게 선 장군의 동상 같은 청동이 아니라, 작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조각은 햇볕에 많이 노출된 부위부터 소멸된다. 어떤 조각들은 다리가, 어떤 것은 머리부터 사라진다. 신체의 일부가 녹으며 점점 형태가 사라지는 얼음은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 전쟁에서 상처입은 신체를 연상시킨다. 덕분에 이 프로젝트는 기후 문제만이 아니라 거대한 참사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2005년 상파울루를 시작으로 파리, 베를린, 피렌체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의 반응은 언론에서 말하는 기후 위기 기사를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어떤 이는 곧 소멸되어 사라질 거대한 빙하 덩어리를 껴안아주고, 혹자는 무너진 사람 조각을 일으켜 세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온기가 더해질수록 소멸은 더 빨라질 뿐이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캐릭터가 하나 있으니, 바로 영화 ‘겨울왕국’의 눈사람 올라프다. 앞서 소개한 작가와 이름마저 비슷한 올라프 캐릭터는 북유럽 출신으로 상정된 모양이다. 뜨거운 여름을 본 적 없는 올라프는 여름을 기다리며 뜨거운 태양 아래 선탠을 즐기겠다고 노래하는데, 이내 녹아버릴 자신의 운명은 생각하지도 못한 순수한 존재다. 그의 바람대로 된다면 사라져 버릴 테고, 여름을 보지 못하게 한다면 계속 노래를 부를 테니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부조리가 아닐까?

온기 더할수록 더 빨라지는 소멸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한 기가 막힌 설치 작품도 있다. 스위스 출신의 듀오 작가 피슐리와 바이스(Fischli and Weiss)의 ‘눈사람’이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눈사람인데, 냉장고에 들어가 있어 여름이 와도 녹지 않는다. 1987년 독일의 화력발전소로부터 공공미술을 주문받고 생각해낸 작품이다. 발전소의 기능을 보여주되 화력이 아닌 얼음이라니! 발상부터 유머러스한 이 작품은 약 1년간 존재한 후 사라졌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기저기서 전시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스위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 각각 일 년씩 선보인 후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87년에 썼던 눈을 지금까지 얼려온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새로 제작한다. 눈사람을 만들어 냉장고 속에 넣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리가 쌓여 점점 덩치가 커지고, 웃는 얼굴도 사라진다. 전시 기간 중에는 냉장고 문을 열고 매일 다시 눈·코·입을 그려 넣는다고 한다. 한여름에도 녹지 않고 선탠을 즐기는 행복한 올라푸의 얼굴이다. 눈사람을 보존하기 위해 전력을 쓰는 것이 오히려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작가들은 미리 대답을 준비한 듯, 화력발전소 전력이 아닌 태양광 에너지를 쓴다.

마천루 냉장고, 과잉 소비의 허상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신제품에 밀려 멀쩡한 제품들이 버려져 산업폐기물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냉장고 얘기가 나왔으니, 한 작품 더 소개해보자. 카더 아티아의 ‘스카이라인’이다. 멀리서 보면 휘황찬란한 마천루가 솟은 대도시 같지만 자세히 보면 요즘은 좀처럼 쓰지 않는 상하로 나뉜 외문 냉장고다. 도시의 휘황찬란한 모습이 실은 과잉 소비로 가득찬 공허한 허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카더 아티아, 무제(스카이라인), 2007 설치. 냉장고, 깨진 거울, 검은 페인트. 가변크기 발틱현대미술센터 설치장면 영국, 뉴캐슬, 2007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Colin Davison

언제부터 이렇게 예술가들이 기후 문제에 관심이 많았느냐고 묻는다면, 기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상파’라는 이름이 모네의 ‘해돋이, 인상’으로부터 오지 않았던가! 기상청 직원들이 비 오는 날 소풍 간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기후는 측정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것들의 대표 주자로, 오랫동안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서 외면받아 왔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날씨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예술가들은 측정 불가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 세계를 파고들어 아주 예전부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 왔다. 예술가들의 대응은 뉴스보다 빠르고 흥미로우며,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예술을 보면 조금 시원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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