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치명적인 징그러움의 매력.. 공포의 육지가재

정지섭 기자 2021. 8. 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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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서 출몰하자 전국에서 '급관심'
가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전갈에 가까워
위협 느끼면 꼬리 끝서 강한 산성액 분비

‘랍스터(바닷가재)’라는 말에 벌써 군침을 흘리는 분들이 상당하실 줄 압니다. 백화점이나 마트 식품매장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목에 랍스터들이 어쩌면 생애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을 수조를 갖다놓았죠. 간판 메뉴로 랍스터를 내놓지 않은 유명 호텔 뷔페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워낙 많이 요리되다보니 살아있는 상태에서 바닷가재를 찜통에 넣는 것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이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들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먹거리로 사랑받는 바닷가재의 앞 두글자가 ‘육지’로 바뀌는 순간 180도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육지가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일명 식초전갈. 텍사스 남부 건조한 지역이 주 서식지이다. /Big Bend National Park 페이스북

기괴한 생김새를 가진 비호감 벌레가 되는 것이죠.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지금 ‘육지가재’ 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텍사스 지역의 대표적 일간지인 휴스턴 크로니클이 최근 여름철 큰비가 쏟아진 뒤 지옥 구덩이에서 육지가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면서 이들의 출현을 소개했습니다.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이 동물의 이름은 영어로는 vinegaroon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식초전갈’ 또는 ‘채찍전갈’로 불립니다. 가재처럼 생긴 것이 뭍을 기어다니는 모습에 ‘육지가재’라고 불리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엄연히 가재·새우보다는 거미·전갈에 가깝습니다. 이들 모두 큰 틀에서는 절지동물이라는 큰 무리에 속합니다. 그런데 가재와 새우는 통상 발이 열 개인 반면, 전갈이나 거미들은 여덟개거든요. 사진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친구들도 다리가 여덟개입니다.

육지가재라고 불리는 식초전갈. 대략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는 사진. /Matt Hayes/CALS. 코넬대학교 교내소식 홈페이지

이름은 가재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전갈과 거미에 훨씬 가깝죠. 휴스턴크로니클의 기사는 “여름철 큰비는 홍수와 꽃만 불러오는게 아니다. 깊은 지옥구덩이에서 온 것 같은 피조물도 불러온다”는, 다소 시적인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주요 서식지인 남부 텍사스의 빅 벤드 국립공원에서도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육지가재의 출현을 알렸습니다. 여름철 큰 비가 퍼붓고 나서 땅이 축축해진 요즘이 한창 출몰시기입니다. 어두운 구덩이를 파고 나와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몸길이는 7㎝이고, 거친 생김새에 걸맞게 훌륭한 사냥꾼입니다. 주로 먹는 것은 노래기, 전갈, 귀뚜라미 등 같은 절지동물들입니다. 야행성이고 시력이 썩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재와 비슷한 커다란 앞발이 훌륭한 감각기관 역할을 해서 먹잇감이 되는 벌레들의 미세한 진동을 느낍니다.

관건은 인체에 유해하느나에 여부인데,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단 사람이 건드리지만 않는다면요. 험상궂은 외모 말고도 이 벌레에는 나름 치명적 무기가 있습니다. 몸통 뒷부분의 기다란 채찍 끝에서는 위협을 느낄 경우 강력한 산성액체를 분비합니다. 식초전갈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된 거죠. 턱으로 물 수도 있고요. 빅벤드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육지가재를 발견하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볼 것을 권합니다. 만일 마주친 육지가재가 암컷이라면 운좋게 등에 꼬물거리는 수십마리의 갓 부화한 새끼를 업고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검은 어른과 흰 아기들이 주변의 어두컴컴한 흙과 더불어 기묘한 흑백의 조화를 이룹니다.

암컷 식초전갈(육지가재)이 여러마리의 새끼를 등에 업고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Diego Barrales. iNaturalist

텍사스발 육지가재의 출현 소식을 미국의 여러 매체들도 후속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도 이 피조물에게서 징그럽고 터부시되지만 그렇기에 묘한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꼽등이와 비교가 되기도 하고요.

다소 징그러운 겉모습 때문에 비호감 곤충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 꼽등이. /국립생물자원관 홈페이지

기다란 더듬이와 큼지막한 뒷다리를 가진 꼽등이는 초록색이 아닌 잿빛의 몸색깔, 마디가 훤히 드러나는 몸뚱아리, 습한 곳에 몰려사는 습성 때문에 모기처럼 사람 피를 빠는 것도 아니고 바퀴벌레처럼 치명적인 병균을 옮기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비호감 곤충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불운한 벌레이기도 하죠. 몸색깔이나 생김새로 짐승의 좋고 싫음을 구분하는건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자책하면서도 튀는 외모는 어떤 방향으로든 경쟁력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지가재든 꼽등이든 딱 저만한 크기 정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벌레들의 몸통이 열 배 스무 배까지 커진다면 어땠을까요? 공상과학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는 환타지 SF 영화가 아닌 현실 다큐멘터리가 되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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