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존재감 상실한 軍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집단감염
한·미훈련 연기 논란에도 침묵
국가안보 최후 보루 역할 무색
한·미 연합훈련 연기 가능성을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국가안보나 남북관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보다는 이념적 잣대에 따라 입장이 갈리고 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청와대가 공개적인 발언을 피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 정당과 통일부 측의 속내가 표출되고 있다. 정작 연합훈련 당사자 격인 국방부의 입장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장관은 연이어 고개를 숙였지만, 무엇 하나 명쾌하게 해결한 것은 없다.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만 하더라도 공군참모총장이 사의 형식을 통해 경질됐지만 군 당국의 잘못된 대응 사례는 오히려 늘고 있다. 개인 비리나 대형 인명사고가 아닌 성폭력 사건 지휘 책임을 지고 참모총장이 처음으로 경질된 사례가 나왔지만, 군 당국의 경각심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승선원들의 집단감염 소식은 군 지휘부 집단사고의 구멍을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조기 귀국한 장병들 다수는 최근에야 퇴원했다. 귀국 당시 음성 판정을 받고 해군시설에 격리된 장병들은 며칠 더 격리상황을 거쳐야 했다. 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장병들을 격려했다지만, 부모와 국민이 얼마나 위로를 받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군 당국은 위상 추락에 수장이 경질론에도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임명권자 주변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서 장관이 당장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책임 있는 조치와 사후대책 우선’의 중요성을 설명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등의 발언을 종합하면 그렇다. 임기 말의 상황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와대와 국방부 안팎의 현실인식이나 대처는 국민의 눈높이를 한참 벗어난 것이다.
국방부는 수장이 경질의 파고에서 당장은 벗어났다고 안도해서는 안 된다. 그러는 사이 군에 대한 기대 자체를 접은 국민도 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국가안보의 책무에 대한 내재화한 기억을 몸과 정신에 간직하고 있다. 고려시대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조선 및 대한제국 시절 의병전쟁에서 보듯 민초들의 안보의식은 권력층에 뒤지지 않았다.
국가의 부름으로 이역만리에서 당당하게 대처했던 청해부대와 문무대왕함에 드리운 시련은 그래서 못내 아쉽기만 하다. 통일신라시대 해상무역기지인 청해진(완도)을 건설한 장보고 대사,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사후에 해중릉에 묻힌 문무왕의 뜻에 군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장보고 대사와 문무왕의 이름에 먹칠을 한 군 당국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환골탈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남북 통신선 복원 등으로 남북 관계 방향과 방법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 연기 가능성도 논란이 여전하지만, 적어도 군 당국이라면 안보 측면을 감안한 발언을 해야 한다. 정무적인 판단에 따라 결국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대화를 위해 안보를 포기해서도, 안보와 대화를 바꿔서도 안 된다”는 결기 어린 목소리 정도는 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군은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여야 할 것이다. 군의 존재 이유와 명제가 여기에 있다.
박종현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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